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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의 XYZ 코칭]<17>법블레스유

발행일2019.09.08 17:00

두 시간 일찍 퇴근하거나 두 시간 늦게 출근하는 반반차 휴가가 생겼다. 반차 휴가 내고 오후에 조퇴하는 경우는 봤어도 고작 2시간 휴가는 생소하다. “볼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일이 생겨서 조금 늦게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담당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면 봐 주던 시대는 아련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출퇴근 시간을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생겨서 상사가 덮어 주고 싶어도 덮을 수 없는 세상이다. 이제 상사 눈치를 보며 미주알 고주알 아쉬운 소리 하는 대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로 조퇴할 수 있다. 법과 규정이 명시화되면서 무임승차는 불가능하고, 아쉬운 소리는 효력을 잃었다. 꼭 좋은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준과 제도, 법과 규약이 인간화 돼 융통성을 집어삼켰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인이 관련법에 해박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급여일이 언제예요?” 하고 신입사원이 묻는 정도가 일반 상식이었다면 이제는 매사에 법부터 확인한다. 근로계약서, '시용'과 '수습'의 차이, 근로기준법, 고용평등법, 임금법, 연장 근로에 따른 할증임금, 퇴직금 지급 분쟁, 해고제한 등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 상식으로 됐다. 법보다 주먹이라는데 요즘은 주먹만큼이나 법이 가까워졌다. 그래서 '법블레스유'라는 신조어가 나왔나 보다. 법블레스유는 '법(法)' '블레스(bless:축복하다)' '유(you)'의 합성어로, “법이 너를 보호했다” “법만 아니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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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소신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숨소밍 세대'라는 말처럼 숨을 쉬듯 소신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고, 사소한 문제라도 불합리하다면 따져 묻는다. 법 조항을 내세워 항의하고, 판례를 들어 근거를 댄다. 이럴 때 후배가 나를 이기려고 한다고 괘씸해 하며 훈계하면 안 된다. 섣불리 가르치려 들거나 힘으로 밀어붙여도 안 된다. 내가 후배였을 때를 생각하며 내 상사에게서 보고 배운대로 하면 큰코다친다. 사실 이 사안은 그 후배와 나의 사안만이 아니다. 이 땅의 청년들이 이 땅의 어른들에 대해 여기고 있는 공통된 집단 사회의식이다. 그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의 어른들에 대한 지금의 청년들이 보여 주고 있는 문화다.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괘씸함에 몸이 떨리고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사람이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으면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면서 과도한 특권 의식에 빠지게 된다. 나는 특별해야 하고, 나는 늘 옳아야 하며, 나는 늘 맞다고 생각하는 자기과신 말이다. 실험에 따르면 권력을 행사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린 사람은 거울 뉴런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상대 입장을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반면에 자신을 힘이 약한 존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울 뉴런이 활발하게 작동해서 타인의 입장을 훨씬 더 잘 헤아렸다. 후배의 법에 대한 소명에 대해 황당함과 흥분이 제어가 안 된다면 자신의 거울신경세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권력의 맛에 취해 제 기능을 상실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거울 뉴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흔들어 깨워야 한다. 내 동생이 이런 경우라면 어떨지, 내 자녀가 지금 이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어땠을지, 나는 이 나이 때 무엇이 가장 두려웠는지를 의식을 통해 상상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바람이 뭔지 민감하게 들을 수 있고, 내가 유독 무엇에 반응하는지 감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대와 나 사이의 미세한 차이나 절묘한 유사점을 포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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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스스로의 관점과 옳음을 고수하려는 태도다. 하나의 옳음만 부여잡고서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여기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자신의 본론은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겉으로 주장하는 요구 외에 이면에 감춰진 진짜 바라는 것이 뭔지를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돈을 바라는 것 같지만 '안전한 미래' '공평한 대우' '진정한 존중'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서로간의 견해 차이를 좁히기 위해 우선 들어야 한다.

실타래가 엉켰을 때는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안 된다. 찬찬히 관찰해서 어디서 어떻게 엉켰는지를 살펴야 한다. 첫매듭을 찾아서 살살 풀어야 한다.

내 관점이 다가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하고, 꼭 내 생각이 옳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도 하면서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기려고 대화하지 말고 상대를 얻으려고 대화를 해야 한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 자네 생각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이런 관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럴 수도 있으니 서로 의견을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자네와 의논하고 싶네”라고 상대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생각의 차이를 나눠야 한다. 요즘 세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때라는 징후가 된다. 열린 마음으로 배울 건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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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차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라운드도 달라졌고 룰도 달라졌다. 잔디가 깔려 있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비탈길에서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다. 종목도 전혀 다르고 써야 하는 근육도 완전히 다르다. 새로운 경기를 새로운 룰로 새로운 경기장에서 하는 거다. 법이 리더를 살리기도 하고 고단하게 하기도 하지만 법 덕분에 새로운 경기에 빨리 적응할 수도 있다. 이것이 진정한 법블레스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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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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