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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라인]말의 무게

발행일2019.09.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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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데스크라는 직책이 직접 글을 쓰기보다는 남의 글을 읽고 고치는 데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순서가 돌아오는 칼럼 마감을 앞두고는 고민이 많다. 모처럼 쓰는 글인데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지, 어떤 논조를 담아야 할지, 어떤 형식으로 끌고 가야 할지 등.

어느 때는 1주일 이상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감 2~3시간을 앞두고 새로운 주제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어떤 데스크는 오래 고민한 것보다 갑자기 잡은 주제가 더 반향이 클 때가 많다고도 한다. 이 직업으로 20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건 어렵다.

지금같이 다른 모든 이슈를 덮어 버릴 정도로 강한 이슈가 있는 시점이면 더 어렵다. 특히 그 이슈가 논쟁의 여지가 큰 이슈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루지 않을 수도,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이다.

당연히 지금의 그 이슈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조 후보자를 두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출고된 기사 건수만 수만 건에 이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사가 쏟아질지 모른다. 뭐가 맞는지, 안맞는지도 이제는 헷갈린다.

지난 2017년 4월 4일자 칼럼으로 '만우절과 무지(無知)'를 쓴 적이 있다.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또는 가짜뉴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때도 언급했지만 이제는 인터넷 발달로 새로운 정보와 생산, 유통이 더 이상 기자 등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시대이고, 이런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 진짜 가치가 있다고 썼다. 머릿속에 많은 지식을 넣어 둔 사람이 경쟁력을 갖추던 시대,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게 능력이던 시대를 거쳤다.

정보 소비 관점에서 쓴 글이다. 그럼 반대로 정보 생산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전 시대에는 작가, 정치가, 기자, 학자 등 특정한 사람만이 기록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물론 그 사람들의 말도 전부가 기록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정제되고 수정될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기록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의 말이나 글이 기록으로 남는다.

오래전 얘기들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소환되어 재론되는 이유다.

조 후보자가 공격받는 이유도 그동안 자신의 글과 말, 행동 등으로 보여 주던 가치관과는 다른 사건들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페이스북 글을 찾아내 그의 지금 행동과 대비시켜 비판한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모두 기록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본인 계정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물론 언론사 기사에 적은 댓글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시대다. 아이디 몇 번 추적하고 조합하면 어렵지 않게 그의 정치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조 후보자는 물론 그를 비판하는 기자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아니면 말고'나 '그때는 그랬고'는 안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가장 가치있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든 그렇지 않든. 특히 지금과 같은 기록 시대에는 언제든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네이버에 물어 보니 말(?)의 무게는 350~700㎏이라고 한다. 아재개그다. 가볍게라도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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