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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과학기술처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으며 요직을 두루 거친 자타 공인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 이상목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다.

이 이사장은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인공제회 6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과학기술인의 선배이자 그들의 삶과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료로서 어쩌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를 이제야 만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따랐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2002년 설립 이래 '과학기술인의 생활안정, 복지증진'이라는 목표를 충실히 달성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회원수 7만2000여명, 총자산 6조4139억원으로 국내 공제회 가운데 수위권 외형을 자랑한다. 과학기술인연금과 적립형공제급여사업 등 생활안정 지원사업과 휴양시설 제공, 의료할인, 무료법률상담 등 복리후생사업이 큰 축이다.

이 이사장은 과학기술인공제회의 외형을 안정적으로 키우면서 회원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2026년까지 회원 수, 자산을 각각 15만명, 20조원으로 늘리기 위해 연금·공제 상품을 확대하고 리스크 관리의 선진화를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 분야 전반에 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연구윤리 논란, 국가 연구개발(R&D) 효율성 등 민감한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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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호준 정치정책부 부장

-취임 이후 9개월이 지났다. 그간 성과에 대해 말해달라.

▲다행히 취임 직후 업무파악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자산운용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관련 전문가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썼다. 나는 주로 과학기술인의 퇴직 후 생활, 생활안정과 관련한 부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공제회 규모가 많이 커졌다. 자산 규모가 6조5000억원 정도 되니까 수익 규모도 늘어났다. 공제회 수익은 경제, 경기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간혹 좋지 않은 상황도 있지만 장기투자 비중이 높다보니 전체적으론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국내보다는 해외 투자 쪽으로 눈을 많이 돌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 예전엔 잘 못 보던 금융, 투자분야 전문가를 많이 만나고 있다.

-과학기술인공제회 운영 목표나 비전은 무엇인가.

▲취임 당시 이미 2026년까지 정해진 목표가 있었다. 내가 다시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틀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연금을 사학연금의 90% 수준까지 키우는 것이 목표인데 꽤 근접했다.

연구자들이 예전엔 사학연금 대상인 교수를 많이 부러워했다. 연구자는 연금을 못 받으니 상대적으로 박탈감도 있었는데 지금은 노후 걱정을 상당히 많이 해소했다는 소릴 듣는다.

그런데 복지는 여전히 좀 약하다. 그동안 생활안정, 즉 자금 혜택에 신경쓰다보니 복지 증진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앞으로는 복지 관련 상품이나 혜택을 많이 늘리고 싶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과학기술 메모리얼 파크'다. 과기인이 작고하면 생전 업적을 기리고 성과도 되돌아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숙원사업이다. 수도권 가까운 지역에 수목장을 만들고 공원식으로 조성해 고인을 기리고 과학기술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 한다. 과학기술 성과물도 전시하고 주변엔 지역과학관, 연수원, 휴양시설 등과 연계한 공간으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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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원사 확대, '사이언스 빌리지' 등 다양한 성과가 알려지고 있다.

▲한국환경공단과 적립형공제급여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환경공단은 과학기술 분야 비영리법인이다. 앞으로 환경공단 임직원이면 누구나 공제회의 적립형공제급여사업에 가입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가입한 회원은 휴양시설, 제휴복지시설, 무료법률상담, 체험형 이벤트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사이언스 빌리지는 과학기술인 실버타운이다. 이런 콘셉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최근 완공했다. 운영은 우리가 맡는다. 규모는 지하 2층, 지상 10층, 연면적 2만7553㎡ 규모로 총 240세대다.

은퇴 과기인에게 주거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전문지식이나 경험을 살려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입주자에게 생활편의, 식사, 의료, 문화·여가활동과 의료 서비스를 지원한다. 당장 수익이 나는 사업은 아니다. 10년 동안은 정착의 의미를 두고 운영하고 그 이후 수익이 나는 구조로 돌아선다.

-과학기술인공제회의 향후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내 관심사를 떠나 기관 운영차원에서 보면 무엇보다 과학기술연금 운용이 가장 중요하다. 수익률을 높여 퇴직연금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회원들이 원하는 바다. 현재 이율이 4.1% 정도다. 복리로 지급하는데 이렇게 주는 기관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토대에서 복지를 하나하나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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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분야 행정 경험이 많다. 최근 과기계가 연구윤리 논란 등으로 시끄럽다.

▲과기계가 언론, 국회에서 지적받고 있다. R&D 관련해 저성과 논란도 있고 연구윤리 불감증에 빠졌다는 지적이 따른다.

우리나라 연구자가 통계상 책임연구자급만 3만명이 넘는다. 연구재단의 통계를 보면 2014년 기준 연구비 부정에 해당하는 연구자는 0.1% 수준이다. 극소수 때문에 전체가 덤터기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과학기술계 전체가 매도돼선 안 된다. 분리해서 자세히 봐야 한다.

부실학회 문제도 비슷하다. 극단적 예로 선의의 피해자도 있다. 잘못한 사람은 엄벌하되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회, 언론도 이런 부분을 꼭 생각해줬으면 한다.

R&D 성과 문제는 정책 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추격형 R&D를 추진했다. 2000년대 초반까진 추격형 사업의 비중이 높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초원천연구 비중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남을 추격하는 연구가 아니라 우리가 특정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발굴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제도가 이 방향성을 뒷받침했는지는 살펴봐야 할 문제다.

선도 연구라는 것은 목표, 성과 측정이 어렵다. 다른 나라, 기업이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하겠다는 거다. 정부 마인드는 옛날식이다. 간섭이 심하다. 목표를 내놓으라고 종용한다. 선도연구는 그렇게 압박해서 당장 뭘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최근 연구자의 주된 주장은 자율성을 달라는 것이다. 정부, 국회가 너무 미세 관리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예산 심사 때도 목표, 기간 등 세밀한 내용을 요구한다. 그렇게 할 사업이 있고 아닌 사업이 있다. 현재 화두인 소재부품 자립 관련해서도 자율성이 확보돼야 한다. 자율성, 사업관리, 제도가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R&D 성과에 대한 조급증도 있는 것 같다.

▲금융 등 일반 분야는 투자하면 성과가 바로 나온다. 과학기술 성과는 빨라야 10년 뒤에 나온다. 현재 반도체, 통신, 신약 분야 성과는 1980년대부터 30년간 정부, 민간이 집중한 기초연구, 인력양성의 결과 아닌가. 장기투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난해 투자를 놓고 올해 성과가 뭐냐고 물으면 안 된다. 지금도 과학기술 분야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성과는 10년 후에 나온다고 강조한다.

성과나 효율성을 정량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추격형 R&D 시절에는 남이 한 것을 따라했다. 10개 가운데 8~9개를 따라잡지 못하면 실패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실패 확률도 높다. 설령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이해'의 관점도 필요하다. 과거 나로호 발사 실패 당시 언론은 물론 정부도 연구자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 실패하면서 노하우를 얻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를 무시했다. 실패에서 나온 엔지니어링 경험, 데이터가 이후 성공에 기여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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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수출 규제 문제는 과학기술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1980년대 신문을 봐라. 이미 그때 소재부품 자립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동안 투자를 많이 했고 자동차 부품 등에서는 성과가 많이 나왔다. 상당부분 따라잡았다.

소재는 여전히 문제라고 본다. 소재를 개발한다 해도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 세계 시장에 공급한다는 목표로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 어렵다. 세계 유통망 확보는 물론이고 국내 대기업조차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성, 수율 등 걸리는 부분이 많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쓰지 않고 설령 수주에 근접하면 해외 경쟁사가 가격 경쟁력으로 압박을 가한다. 이런 부분을 다 감안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전략적으로 중소기업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기술을 자립할 수 있는 실제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키워줘야 한다.

우리나라 과학경쟁력이 많이 올라왔다. SCI급을 3만건씩 쏟아낸다. 시간, 자본을 갖고 전략적으로 투자하면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당장 우리가 주요 기술을 따라 잡을 수 있다고 보나.

▲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본이 확보한 기술도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단기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

이참에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한다. 좋은 시스템은 연구자의 뜻, 의지가 정책과 제도에 반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가 원하는 것을 행정 분야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출연연 소속 연구자가 장관을 쉽게 만났다. 지금은 출연연 원장이 부처의 국장도 만나기 힘들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정부가 출연연 운영 방향과 관련해 NST를 많이 믿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 연구비, 연구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분명 도달했다. 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 우리 연구 인력을 제대로 활용해야 생산성 높아진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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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이사장은…

1973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와 198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각각 토목공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13회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1980년 과학기술 대덕단지관리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이력이 이 이사장과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 간 교류, 소통을 원활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후 과학기술부 전략기술개발과장, 공보관, 기초연구국장,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실장 등을 거치며 다양한 행정 경험을 쌓았다. 나로호 사업에도 관여했다. 전략기술개발과장 시절 실무를 맡았다. 2010년 공직을 떠난 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과학기술 전담부처 부활 등 과학기술계 여론을 국회, 행정부에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과학기술을 전담하는 1차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30여년간 과학기술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리=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
사진=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