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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 박사의 4차 산업혁명 따라잡기]<6>신기술이 자리 잡아 가는 과정

발행일2019.08.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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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기술은 사업 가치 판단이 쉽지 않거나 실용화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증기엔진과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범용 기술이 어떻게 자리 잡아 가는지를 살펴보자.

증기엔진은 역사가 2000년 이상 됐지만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실용성을 갖추지 못한 수준이었다. 1712년 토머스 뉴커먼이 발명한 증기엔진으로 광산의 물을 퍼낸 것이 최초의 상용화였다. 효율이 약 3%인 뉴커먼의 증기엔진이 별것 아닌 것처럼 인식될 수 있겠지만 당시의 큰 숙제인 광산의 물을 150m 깊이까지 퍼낼 수 있었고, 150마리 말이 하던 일을 대신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제임스 와트가 1769년에 발명한 증기엔진은 효율이 약 10% 이상 소모되는 석탄과 물을 크게 절약할 수 있어 보급이 빨랐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1776년 2대의 증기엔진을 처음 판매한 후 광산, 압연공장, 양조장 등에 공급했다. 1781년 증기엔진에 크랭크를 도입해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꿀 수 있게 됨으로써 실질적인 다용도 동력원이 됐다.

섬유 산업에 증기엔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79년 새뮤얼 크럼프턴이 증기엔진을 사용하는 뮬 방적기를 발명한 이후다. 기술 및 산업이 진전했음에도 와트의 증기엔진은 지나친 기술보호 전략 때문에 1800년까지 매우 느린 속도로 보급됐다. 1775년~1800년 와트의 엔진은 약 450대가 생산된 반면에 뉴커먼 엔진은 약 1000대가 생산됐다. 특허가 만료된 1800년 이후 증기엔진은 효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보급이 가속됐다.

컨베이어벨트는 18세기 초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현대식 컨베이어벨트는 1785년께 제분소를 경영하던 올리버 에번스가 밀이 담긴 자루를 높은 곳으로 옮기는 용도로 개발했으며, 그 후 100년 이상 사용됐다. 도살장, 제빵공장, 군용시설에서 운반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컨베이어벨트를 사용했다. 증기엔진으로 운전되는 컨베이어벨트는 1804년 영국 해군이 장기 보관용 비스킷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처음 사용했다. 1892년 토머스 로빈스가 석탄이나 광물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1901년 샌드빅 사의 강철 소재로 만든 컨베이어벨트, 1905년 리처드 서트클리프가 석탄운반용 컨베이어벨트를 제작했다. 자동차 조립공장에 컨베이어벨트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올즈모빌 사의 랜섬 올즈였다. 대량 생산으로 자동차 가격을 낮추기로 한 헨리 포드는 2년여의 연구를 거쳐 1913년 분업 체계와 컨베이어벨트를 접목한 조립 라인을 구축했다. 자동차 1대 생산에 12시간 걸리던 것을 1925년 10초로 단축했다. 자동차 1대 가격은 780달러에서 260달러로 낮춤으로써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아이디어는 도축장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컨베이어벨트 기술을 활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컨베이어벨트 방식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증기엔진 같은 범용 기술은 한 번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진화하며, 끝없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생명력이 있다. 기존의 범용 기술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따라서 신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과 함께 먼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은 다음 필요한 기술을 찾아 빠르게 대응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동반돼야 한다. 와트의 증기엔진 사례가 가르쳐 주듯 혁신 기술도 값싸고 편리한 제품으로 구현돼야 하며, 지나친 기술 보호보다는 전체 시장을 빨리 키움으로써 큰 이득을 나눠 갖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 주에는 사회간접자본(인프라)이 산업혁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jkpark@nanotech202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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