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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온고지신]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을 고쳐야 미래가 있다

발행일2019.07.21 19:00
Photo Image<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그 분야에 관심이 생긴다. 평소 깊은 관심을 두지 않다가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지면 그제야 미리 준비하지 못했음을 탓하는 사례를 그동안 많이 봐왔다. 그럴 때마다 언론에는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등장하며, 뒤늦은 대처를 비난한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인한 반도체 산업 타격에 대한 시선 역시 그렇다. 그동안 반도체 강국으로만 여겨졌던 우리나라가 일부 반도체 소재 공급이 막혀 산업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자 왜 이를 예견하고 준비하지 못했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비난보다는 이후 대처가 더 중요하다. 아직 남아있는 소, 그리고 새로 키울 소를 위해 어떻게 외양간을 제대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제라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취약점을 보완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성장한 우리 산업은 그동안 개발 주도로 선진국 따라잡기에 집중한 형태였다. 그동안 우리 외양간에 취약한 곳은 없는지 살피거나 이를 바로 잡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부족한 기술 분야를 검토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 제대로 수리해야 한다. 이번과 같은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는 이제라도 반도체 핵심 소재, 부품에 대한 연구개발(R&D) 대책을 마련해 집중 투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계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가득하며,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R&D 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 의견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R&D 투자는 양적으로만 보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 내용보다 성공률이나 논문, 특허 같은 양적인 연구 성과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어 투자 대비 질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양적인 성과를 중요시하는 문화는 결국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연구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산업과 경제는 반도체 강국과 같은 타이틀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기초 연구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핵심원천기술은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좋은 연구 환경, 즉 좋은 외양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원천기술이라는 소를 잘 키워야 할 것이다. 원천기술과 관련 분야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동안 집중했던 단기 연구과제보다 기초과학과 장기 연구과제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보다 혁신적인 연구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결과에 대한 인내심도 필요하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은 특히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미래 산업 중심이 될 분야, 그리고 국가 경제와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분야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상용화 시점까지는 여전히 많은 기술 개발과 투자를 필요로 하지만 향후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력이 큰 핵융합에너지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핵융합에너지는 현재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선도하고 있는 연구 분야이지만 자칫 주춤하는 사이 원천기술을 확보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우리가 원천기술 확보 기회를 놓친다면 지금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인한 충격적인 사태와 같은 일은 어느 분야에서건 미래에 반복돼 일어날 수 있다.

이번에 드러난 반도체 핵심 소재의 높은 해외 의존도가 가져온 위험성처럼 그동안 빠른 산업 성장 그늘에 가려져 있던 취약점이 추후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선제적으로 담을 수 있는 연구 환경과 걸맞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장 sjyoo@nf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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