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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단상]유료방송시장 사후규제와 시대정신

발행일2019.06.04 14:40
Photo Image<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넷플릭스드(NETFLIXED)'. 미국 최대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트'가 넷플릭스 등장 이후 변화 흐름을 읽지 못하고 파산한 과정과 교훈을 미국 저널리스트 지나 키팅이 분석한 책 제목이다. 블록버스터는 한때 매장 9000여개와 회원 4000여만명을 통해 매년 매출 30억달러 이상을 올리던 기업이다.

넷플릭스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콘텐츠 투자 공세는 올해도 이어진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지난해 합산 매출보다 많은 150억달러(약 17조원)를 지출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디즈니, AT&T, 컴캐스트 등은 넷플릭스에 당하지 않기 위해(?) 앞다퉈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다. 콘텐츠와 플랫폼 경계를 무너뜨리며 비즈니스 모델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 시장은 어떠한가. 지상파는 역성장 추세 속에 경쟁력 회복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고, 유료방송 시장 역시 가입자 포화와 성장 전략 부재로 정체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유료방송 가입자와 매출은 모두 10% 미만의 낮은 증가율을 보여 주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다행히 유료방송 사업자와 정부·국회는 최근에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그나마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전 구조 규제인 합산 규제를 재도입하려던 시도를 포기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김영삼 정권 이래 마구잡이개발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콘텐츠 수급 등 시장 수요 예측 없이 정권 탄생 기념품처럼 만들어 낸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은 도리어 방송 산업의 체질을 약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출구 전략이라도 제대로 마련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각각 국회에 제출한 유료방송 관련 개선 방안을 보면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방송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국내 사업자를 지키려는 측면보다는 유료방송 공정 경쟁과 지역성 보장 등 공허한 레토릭을 핑계 삼아 어떻게 사후 규제를 해야 자기 밥그릇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현재 세계 미디어정책의 기본 방향은 규제 완화에 기반을 둔 경쟁 촉진을 통해 결합 상품 다양화와 소비자 이익 극대화에 맞춰져 있다. 강력한 방송 규제 중심 정책을 펼쳐 오던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최근 대규모 M&A를 허용해 준 몇몇 사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방송 관련 소관 부처는 정부의 통일된 합의안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올해 상반기의 유튜브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이용 시간 비중은 85.6%에 이르고, 넷플릭스 가입자는 150만명이 넘었다. 여기에 넷플릭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디즈니 플러스'가 오는 11월 국내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이런 추세라면 수년 안에 국내 미디어 시장은 글로벌 기업만의 각축장이 되고 종국에는 시장을 다 빼앗길 수밖에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아니라 소 잃고도 정신을 못 차려서 결국 외양간마저 잃을 상황이 되는 것이다.

몇 개월 전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넷플릭스에 대항할 한국형 글로벌 OTT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한국형 OTT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와 국회의 인식 대전환 속에 현재 쟁점이 되는 제도와 관련 법안을 하루속히 바꾸거나 개선하는 등 시장 불확실성을 제거해 줘야 한다. 과도한 시장 지배로 인한 '시장집중사업자' 이슈 등은 기존 방송 시장 경쟁 상황 평가 제도 등을 활용하면 최소화할 수 있다.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절체절명의 소생 기회를 불필요한 사후 규제 논의로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블록버스터라는 공룡이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 반추해 보면 지금 규제 논의가 얼마나 반역사 행위인지 느껴지지 않는가?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dksung@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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