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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논쟁이 심화된다. 찬성하는 환자단체와 반대하는 의사가 팽팽히 맞선다.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환자가 제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적 분위기도 CCTV 설치로 기울어진다. 반면 의사는 의료행위 위축과 잠재적 범죄자 인식이라는 점에서 강력히 반대한다.

수술실은 폐쇄적이고 전문적이며, 환자 생명을 다루는 특수한 공간이다. 마취로 잠든 환자와 다수 의사만 존재하기에 정보 불균형은 필연적이다. 왜곡과 은폐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의료행위 위축을 막으면서 환자 권익을 보호할 정보 수집 범위와 방법론을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의사-환자 신뢰를 회복할 노력이 절실하다.

◇연이은 사고에 경기도 첫 'CCTV 설치'

수술실 CCTV 설치 논란이 점화된 것은 2016년 9월 분당차여성병원에서 29주 만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를 급히 옮기다 의료진이 떨어뜨린 사고가 최근 알려지면서 부터다. 아기는 약 7시간 만에 사망했는데, 의료진은 사고 사실을 숨기면서 국민 공분을 샀다.

수술실 사고에 더해 그동안 논란이 됐던 대리수술, 수술실 내 인권침해 등 문제까지 재점화 되면서 경기도가 가장 먼저 칼을 빼 들었다. 1일부터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포천 등 5개 도립병원 수술실에 CCTV를 추가로 설치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10월 국내 처음으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시범 운영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핵심 보건정책 중 하나로 추진됐다. 이런 상황에서 분당차여성병원 사고가 경기도에서 발생한데다 안성병원 환자 만족도까지 높으면서 추가로 다섯 군데 병원에 설치·운영했다.

경기도는 도내 의료원을 넘어 전국 종합병원·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을 중앙정부에 제안했다. 도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에는 전국 의료기관 6만7600개소 중 종합병원 353개, 병원 1465개 등 총 1818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수술실에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하도록 했다. '의료인, 환자 등 정보주체 동의를 받은 경우'로 한정했다. 또 민간 확대를 위해 국공립병원 중 종합병원, 병원급 의료기관 96개소에 우선 설치하는 것도 제시했다.

윤덕희 경기도 보건정책과장은 “안성병원만 하더라도 CCTV 촬영을 원하는 환자 비율이 2018년 10월 53%에서 올해 2월 73%까지 올라가는 등 환자가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의료계가 반대하지만 인권, 대리수술 문제 등을 고려하면 경기도립병원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 “'깜깜이' 수술실, 환자 권익보호 체계 절실”

환자단체는 의료현장의 정보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수술실 CCTV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당차여성병원 사건에서 보듯 가장 폐쇄적인 공간에서 환자도 모르는 사이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진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환자 권익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CCTV가 답이라는 목소리를 낸다.

최성철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고와 의료분쟁을 예방하는데 CCTV 설치 효과를 기대한다”면서 “의사 몸에 카메라를 설치해 수술 장면 하나하나를 촬영하는 게 아니라 천정에 전체적인 상황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료계가 우려하는 감시는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수술실 내 의료사고와 비윤리적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됐다. 국내에서는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가 사고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여서 폐쇄적인 수술실 내 문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사실상 수술, 의무기록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왜곡할 경우 답이 없다.

대리수술 문제도 CCTV 설치에 힘을 실어준다. 무면허인 의료행위로 대표되는 대리수술은 매년 발생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약 5년간 대리수술 적발 건수는 총 112건이다. 매년 10~20건씩 꾸준히 발생한다.

적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다. 실제 대리수술로 적발된 의료인에 대해 면허가 취소된 사례는 전체 112건 중 7건(6.3%)에 불과하다. 나머지 105건(93.8%)은 자격정치 처분에 그쳤다. 자격정지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의료현장에 복귀할 수 있어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환자단체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대리수술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해서라도 수술실 CCTV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의료계 “의료행위 위축, 환자에 악영향”

의료계는 여전히 수술실 CCTV 설치는 안 된다고 맞선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행위 위축'이다. CCTV가 설치되면서 감시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된다는 점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더구나 의료행위의 적극성과 자율성까지 침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환자 주장도 이해가 되는데 실제 설치될 경우 의사가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과 압박은 꽤 크다”면서 “가령 수술 상황에 따라 때로는 모험적 행위를 할 때가 있지만, CCTV 설치 후에는 안 좋은 결과를 낳을까봐 모험적 선택을 자제해 소극적 의료행위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의료인 진료가 위축돼 환자를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가 방해될 뿐 아니라 의료행위를 받은 환자와 의료 관계자 사생활과 그 비밀이 현저히 침해될 수 있다'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또 이런 문제로 인해 수술 의료진과 환자 신뢰 관계가 무너지는 최악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CCTV 설치에 따른 각종 민원 요구에 의사 본연 업무에 지장을 주는 한편 신뢰, 권위 문제도 부각될 것이라고 의료계는 우려한다. 환자가 의료사고 혹은 과실을 주장하는 사례가 대폭 늘 것이며, 이 근거로 CCTV 열람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한 병원 의사는 “최근 환자들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늘면서 의료사고나 병원 과실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수술실 CCTV가 설치되면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잦은 CCTV 열람을 요구하거나 사고라고 주장할 경우 의사는 본연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의무화 입법 추진..신뢰 회복에 바탕을 둔 접점 찾아야

현재까지 수술실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다. 지난해 9월에도 경기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도민 93%가 '수술실 CCTV 설치 운영이 의료사고 분쟁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91%는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설치 운영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여론이 찬성을 기울면서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규백 민주당의원은 수술실 CCTV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20대 국회 들어 수술실 CCTV 관련 첫 발의다. 개정안에는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수술은 의사가 환자 동의를 얻어 수술 장면을 CCTV로 촬영해야 하고, 환자가 별도로 CCTV 촬영을 요청하면 의사는 거부할 수 없다.

경기도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까지 보건복지부가 검토하면서 CCTV 설치 의무화 논의는 급물살을 탄다. 하지만 입법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실제 2015년 최동익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내용이 포함된 의료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의료계 반대와 의원들도 법안 통과에 소극적이었다.

법률 전문가도 이번 사태를 입법으로만 해결하기에는 민감한 문제라고 본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정한 CCTV 규정에 따르면 수술실은 공공장소가 아니어서 설치 및 촬영을 위해서는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당사자라 함은 의사, 환자가 되는데 이 둘 모두 동의하는 게 쉽지 않다.

어린이집 사례를 들어 의무화될 가능성도 있다. 2015년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됐을 때도 보육교사들은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어린이집이 사적 공간임에도 사고예방이나 아동학대 방지 효과가 있어 CCTV 설치는 합당하다고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근본적으로 의사-환자 간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한 다음 상호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CCTV 설치 범위와 방법론 고민이 필요하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이 논란은 신뢰의 문제인데,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입법과정이나 입법 후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을 것”이라면서 “의료계가 환자 신뢰를 회복하면서 수술 의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CCTV 설치를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