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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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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게임이 새로운 교육 코드로 떠오른다. 학교에서 공식화된 정규과목 또는 상담도구로 가치를 재조명 받는다. 기존 교육에서 배제 받은 학생의 안정감을 회복시키고 잠재능력을 발휘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방승호 교장이 이끄는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정규 고등학교에서 담당하기 어려운 분야 교육을 한다. 이른바 '각종학교'다. 서울시 소재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위탁 직업교육 하는 곳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치고 3학년이 될 때 1년간 위탁 교육을 한다. 전학은 아니다. 매주 월요일은 '본교'로 등교한다. 졸업장도 원소속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4개 계열 14개 학과로 구성된 직업교육을 운영한다. 과목은 사진영상미디어를 비롯 패션디자인, 방송영상, 플라워디자인, 실내건축디자인, 만화애니메이션, 비주얼콘텐츠디자인, 한·양식조리, 제과·제빵, 미용예술, 관광서비스, e스포츠, 게임제작, 실용음악으로 편성됐다.

이 중 눈에 띄는 건 두 개 게임관련 학과다. 학교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게임이 교정에서 지도교사와 전문코치 지도로 교육이 이뤄진다.

방 교장이 게임 가능성을 눈여겨 본 건 미국 유학시절이었다. 놀이와 접목한 상담 효과성을 깨달은 이후다. 지금도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지만 이론과 임상경험을 통해 새로운 교육 도구로써 게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가 아현산업정보학교에 처음 오던 때에는 인문계에서 포기한 이른바 문제아가 가득했다. 왜 공부를 포기했는지 상담하다가 모두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방 교장은 “가정생활에 대한 어려움과 이어지는 불안감, 따라가지 못하는 영어, 수학 수업이 겹치면서 공부에 손을 놓는다”며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이 이러한 행위를 자책하고 그에 따라 위축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래서 학교에 PC방 수준 시설과 학과를 만들었다. 선발도 게임으로 했다. 초창기에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거나 대드는 학생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했다. 안정감을 되찾아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방 교장은 “솔직히 처음 학과를 개설할 당시 목표는 졸업이었다”며 “그런데 아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껍질을 벗고 변화하고 성장해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나 역시 생활지도 차원에서 바라보았던 생각이 변화했다”며 “일단 학교에 가방만 들고 오기만 하면 변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성과는 인성의 변화였다. 게임을 상담과 연결해 변화를 이끌었다. 누구나 착하고 밝지만 기성 교육제도와 환경 때문에 제대로 표출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방 교장은 “아이들 인성이 발현되는 건 인정을 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 때문”이라며 “성취감을 느끼며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e스포츠과는 매년 프로선수를 배출한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도 거머쥐었다. 방 교장은 “33년 교직에 있으면서 이렇게 소름 돋는 경험은 처음 해봤다”며 “상담을 통한 가장 극적인 성공이다”고 평했다.

성과는 e스포츠 프로게이머 배출만이 아니다. 일부 학생은 졸업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아 떠났다. 이들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며 “내 실력으로 프로 선수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게임 분야 속에서 다른 일을 찾겠다”고 말한다. 게임을 정규과목으로 해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학부모들 역시 변해가고 있다. 학생이 게임으로 진로를 선택할 때 갈등이 발생하기 일쑤였으나 최근에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전폭 지원을 선언했다.

방 교장은 “단순히 학교에서 게임만 시킨다면 부모는 절대 인정 안 한다”며 “게임업계에서도 교육과 연결된 상담요소로 접근해 볼 가능성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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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교장은 아이들을 좀 더 깊이 알아가면서 게임을 시작하는 시기가 중학교 무렵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래서 마포구청과 함께 초·중학생에게도 게임 관련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건전한 게임 문화를 형성하고 청소년에게 게임 분야 비전과 진로를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취지에 공감한 프로선수들도 참가했다. e스포츠 전문가가 게임 교육을 진행하며 전문상담가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조절력과 통제력을 기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을 펼친다.

지난 4년간 매년 9회기 씩 3번을 실시했다. 수업 중 욕이 사라졌다. 지각생도 없었다. 교육 후에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청소년 인터넷 자가진단 척도 검사에서 일반사용군으로 분류됐다. 잠재적, 고위험군 아이들이 게임을 조절하며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된 것이다.

방 교장은 “부모 보살핌이 부족한 아이들은 학교와 멀어진다”며 “게임을 통한 교육으로 과몰입을 해소하고 자기 절제력을 자연스럽게 배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지 말라고만 하면 아이들은 도망갈 뿐”이라며 “게임을 인정하니 아이들은 밝은 에너지와 환호성으로 답을 했다”고 강조했다.

게임을 통한 상담교육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방 교장은 'e스포츠 영재교육센터'를 학교에 만들었다. e스포츠 교재를 만들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게임 플래너'를 개발했다. 학생과 관계 개선을 위한 동기부여 모험놀이, 모험놀이 보드 등을 만들어 적용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미래교육 거점형선택교육과정'으로 선정해 힘을 준다. 인문계 고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좋아하는 학생 20명을 선발해 게임을 통한 교육을 시도한다. 생활기록부 교과학습발달 상황에 기록되는 정식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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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호 교장이 가사를 쓰고 학교 댄스팀이 출연한 Dont worry는 "하루 종일 앉아 게임만 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어, 따가운 시선과 지겨운 잔소리 하지만 후회없어 너라면 할 수 있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방 교장은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게임을 하면 게임 과몰입할 염려가 있지 않겠느냐고 걱정의 눈초리를 보냈다”며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게임을 규칙적이며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변화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 눈은 초롱초롱 빛났고 얼굴에 광채를 띄었으며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며 “게임을 통해 교육의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게임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질병 코드가 아니고 건강코드이며 새로운 교육코드임을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