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가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모차르트의 위대한 오페라를 학예회 수준으로 저하시키고 작품 자체가 가진 고유의 정서와 매력을 어떻게 없앴는지 살펴봄으로써, 국립오페라단의 안목과 수준에 대한 솔직히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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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경쾌함도 없고 웅장함도 없다! 모차르트를 만나는 설렘이 서곡에서부터 느껴지지 않는다!
 
<마술피리>는 원래 모차르트다운 경쾌함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오페라이다. 그렇지만 이번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에서는 그런 장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지휘자 토마스 뢰스너는 무척 힘을 줘 지휘를 했는데, 불필요하게 큰 동작으로 지휘의 강약 포인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지휘와 연주가 일치하지 않았고 서곡이 주는 감동은 없었다. 그 이후 곡에서도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했는데, 서곡에서 가장 크게 작용해 공연 초반 몰입을 방해했다.
 
지휘자는 도취돼 지휘하고 오케스트라는 알아서 연주하는 느낌을 줬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바로크 전문 연주 단체인데, 지휘자는 바로크 악기와 음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휘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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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술피리>는 서곡부터 모차르트가 마음속으로 훅 들어오는 오페라인데, 지휘자는 경쾌함도 살리지 못하고 웅장함도 살리지 못하고 바로크 음악의 묘미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운데, 연출과 무대/의상이 만든 어이없음에 비하면 지휘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지휘는 모차르트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것이지 왜곡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동화적 구현인가? 대규모 오페라를 학예회처럼 만든 연출가 크리스티안 파데와 국립오페라단!
 
연출가 크리스티안 파데는 <마술피리> 초반에 장난감 뱀을 장난감 뱀이 잡는 것으로 표현했다. 원래는 큰 뱀에 쫓기던 타미노(허영훈, 김성현 분)가 파파게노(안갑성, 나건용 분)를 만나게 되는 긴박감과 명분을 부여하는 장면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만남에서부터 왕자 타미노의 존엄성과 새잡이 파파게노의 순수함을 모두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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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술피리>는 고품격이면서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오페라인데,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면서 굳이 수준을 저하시킨 이유는 무엇일지 이해하기 어렵다. 크리스티안 파데는 작년 10월 국립오페라단의 <헨젤과 그레텔(Hänsel und Gretel)>에서도 기본 정서조차 살리지 못하는 수준 낮은 연출을 했는데, 이번에도 기용된 이유가 무엇일지 이해할 수가 없다. 윤호근 예술감독 취임 이후 국립오페라단은 크리스티안 파데에게 실습 무대로 연거푸 맡길 정도로 안목이 저하된 것일까?
 
크리스티안 파데와 국립오페라단은 새를 잡는 사람인 파파게노를 닭으로 만들었다. 새가 새를 잡는 것도 아닌 닭이 새를 잡는 것으로 표현해, <마술피리>에 대한 호기심과 판타지를 공연 초반부터 없애기 시작했다. 타미노를 찾아온 시녀들(김샤론, 손진희, 김향은 분)의 복장을 마치 장례식장 복장처럼 만들었다는 점 또한 배역이 가진 정서에 대한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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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연출은 <마술피리>에 <어린왕자>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미지를 억지로 넣으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동화적 구현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일관성 없이 상충된 연출을 했다. 국립오페라단은 크리스티안 파데는 정말 멋진 대규모 오페라를 학예회 급으로 만든 것이다.
 
파파게노를 닭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시녀들이 파파게노에게 벌을 내리는 장면은 동물 학대 장면으로 보인다. 원래의 정서를 무시하고 없애려고 작정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잔혹동화적 구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작품은 절대 그렇지 않지만, 이번 <마술피리>는 정서상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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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들을만한 것은 실력파 성악가들의 아리아
 
원래 <마술피리>는 오페라가 이렇게 감동적인지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들을만한 것은 실력파 성악가들의 아리아뿐이다. 모차르트의 음악과 실력파 성악가들을 기용하고 이런 프로덕션을 만들려면, 차라리 갈라 콘서트를 했어야 한다.
 
검은색 옷을 입은 출연진은 종이를 흔들어 새처럼 표현하고, 무대 장치를 수동으로 이동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꿨다.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이라는 훌륭한 공간에서 불필요한 소음과 시각적 방해를 자처해, 연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연극적인 연출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술피리> 원래 버전에도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지만 이번 프로덕션에서의 수준 낮은 선택은 <마술피리>가 가진 고유의 연극적 재미를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크리스티안 파데가 이렇게 연출할 때, 예술감독을 비롯해 드라마투르그, 협력연출, 조연출, 무대감독, 미술감독, 의상감독 등 한국인 스태프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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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밤의 여왕! 카리스마와 매력이 넘쳐야 반전이 가능한 캐릭터의 매력을 처음부터 제거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소니아 그라네 분)은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다. 밤의 여왕은 카리스마 넘치고 매력적이어야 반전이 일어났을 때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폭이 크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처럼 표현된 밤의 여왕은 타미노에게 딸의 구원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타미노를 죽일 것 같이 협박했다. 밤의 여왕이 어떤 캐릭터인지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고, 밤의 여왕이 가진 정서, 관객이 느낄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연출과 국립오페라단에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공감할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안목과 공감능력에 대한 의심은 이번 공연의 오브제 사용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마술피리>는 원래 촘촘한 상징성을 가진 작품이다. 왜곡된 상징성, 오남용된 오브제를 모차르트가 직접 본다면 어떻게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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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이런 공연에 김순영이 소비된다는 점에 매우 마음이 아프다
 
연출과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을 동화적으로 표현한다고 하면서, 모노스타토스(김재일 분)가 파미나(김순영, 윤상아 분)에게 성폭행을 가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다. 관객의 동심을 보호하지도 않으면서, 일관성도 전혀 없는 연출을 한 것이다.
 
<마술피리>는 타미노와 파미나가 맺어지고, 파파게노가 파파게나(박예랑 분)와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파미나는 타미노도 아닌 파파게노에게 키스를 하고, 여러 번 손을 잡고 이동하는 등의 스킨십을 한다.
 
이번 프로덕션은 파미나와 파파게노 또한 일관성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파파게노는 여자 손도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캐릭터로 파파게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에서 관객들로부터 응원의 박수를 받아야 되는데, 파미나와 벌써 키스도 하고 스킨십도 계속했기 때문에 그런 정서는 이번 공연에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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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제2막에서 파파게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죽어버릴 거야”라고 노래 부른다. 제1막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던 관객은, 파파게노가 새로운 사랑(파파게노)을 기다리지 않고 파미나에게 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미나가 하는 행동을 보면 파파게노와 사랑에 빠져야지 타미노의 사랑을 기다린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 파파게노의 양 볼에 두 손을 대고 노래 부른 파미나가, 왜 타미노의 사랑을 기다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런 일관성 없이 정서에도 맞지 않는 파미나 역할을 한 김순영의 심정은 어떨까? 최고의 성악가 김순영을 이런 식으로 소비해도 될까? 모차르트가 본다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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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이번 공연은 지혜로운 자라스트로(양희준 분)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조폭 두목과 조폭처럼 표현했다. 흉기를 들고 등장해 타미노와 파파게노를 협박하고, 세 가지 테스트를 하는 장면은 마치 납치하는 장면처럼 묘사했다.
 
제2막에서 자라스트로를 따르는 사람들은 나눠준 돈을 그 자리에서 세며 좋아했는데, 수준 높은 정신세계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돈을 받고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로 묘사됐다. 이런 연출은 관객에게 감동의 여운이 아닌 찝찝함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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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너무 어둡게만 흐른 공연! 불필요한 파파게나의 노출!
 
<마술피리>는 어두운 장면과 밝은 장면이 리드미컬하게 반복될 때 다채로운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대부분 너무 어둡게 진행된다.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밝게 전환되는 것을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다. 밝음과 어두움의 공존과 대비가 주목되는 <마술피리>의 묘미를 찾아볼 수 없다.
 
타미노와 파미나가 만나는 장면에서 근처에 있던 사람의 머리 위에는 불이 켜지는데, 세상이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타미노와 파미나가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소품으로 처리된 다른 사람의 머리 위가 밝아지는 것이다. 중요한 장면에서 수동으로 구조물의 방향을 바꾸며 소음을 냈던 것처럼, 연출과 국립오페라단은 관객이 <마술피리> 본연의 매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꾸준히 노력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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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파파게노와 파파게나가 만날 때 둘은 닭 또는 새라고 보이는 모습으로 만난다. 게다가 파파게나는 맥락에도 맞지 않는 노출 의상을 입는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 의상을 입게 한 것일까?
 
이번 <마술피리>는 국립오페라단의 안목과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다. 직전 작품까지는 훌륭했고 이번 작품만 이렇게 만들었다면 단순한 시행착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년 <헨젤과 그레텔>에 대한 반성 없이 같은 연출을 재기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대적인 자기반성과 안목의 개선이 없는 한 국립오페라단을 정점으로 한 우리나라 오페라의 수준 저하를 막기 힘들 수도 있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