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통상임금 2심 소송에서 패소했다.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로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위기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산업계는 경쟁력 후퇴와 고용 위축 등에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22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1심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중식비와 일부 수당 등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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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서울 양재동 사옥 전경.

소송 핵심 쟁점이던 '신의성실 원칙(신의칙)'을 재판부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앞서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들은 2011년 연 70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수당,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2014년 10월에는 13명의 근로자가 통상임금 대표 소송을 냈다.

2011년 소송을 낸 노조가 사측에 청구한 임금 차액 등은 총 6588억원이다. 여기에 이자 4338억원을 더하면 총액은 1조926억원에 달한다.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채권 청구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최근 3년 치 임금이다. 재판부가 산정한 미지급 임금은 3년 치 4224억원이다.

기아차와 산업계는 즉각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기아차는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아 유감이며 면밀한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소송 외 노동조합과 통상임금 특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자율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판결은 노사가 1980년대 정부 행정지침(통상임금 산정지침)을 사실상 강제적 법적 기준으로 인식해 임금협상을 하고, 이에 대한 신뢰를 쌓아왔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한쪽 당사자 주장만 받아들여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고 승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임금협상을 둘러싼 제반 사정과 노사 관행을 고려하지 않고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신의칙 적용 기준으로 삼는 것은 주관적, 재량적, 편파적인 판단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 경영성과를 단순한 회계장부나 재무제표에서 나타나는 단기 현상으로 경영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기아차뿐 아니라 다른 국내 자동차 생산회사들도 통상임금 부담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국가적으로도 자동차산업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을 간과한 채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적 법 해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