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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디지털 금융 소비자 보호 정책을 용역까지 주며 조사한 데에는 IT기반 금융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일종의 '디지털 카스트제'가 발생했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스마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 소외계층이 발생하고, 오히려 편리하게 활용할 디지털 서비스가 이들에게는 차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창구 중심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채널로 금융산업이 급격히 재편되면서, 취약계층이 늘어가고 있다.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 이 중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소비자가 오히려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여러 불편함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나는 스마트폰이 두렵다

사람이 하던 모든 금융업무를 이제 IT기기가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보어드바이저 등 최첨단 기술이 융합되면서 자산관리부터 단순 금융업무까지 이젠 비대면으로 해결 가능하다. 언뜻 보면 불완전 판매가 해소되고, VIP만 이용하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일반 소비자가 받는 평등한 금융 생태계가 조성된 것처럼 보인다.

신용 연체가 많은 저소득층 대출 심사를 사람이 아닌 IT가 객관적으로 하고, 자산을 늘리는 PB 기능도 로보어드바이저가 대체했다.

문제는 이에 걸맞은 소비자 보호 정책과 가이드라인은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디지털 금융 규율 체계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기기 등을 이용하는 스킬이 부족하거나 디지털화 된 금융 서비스 환경에서 운영되는 기술 접근이 힘든 계층이 양산됐다. 상품은 오히려 복잡해지고, 서비스를 받기가 무섭다. 간편결제를 예로 들면 수많은 결제 플랫폼이 출현하면서 소비자는 극도의 피로감에 빠진 형국이다.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의지 자체가 사라진다.

과거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에 익숙한 세대는 음성, 홍채, 지문인식이라는 새로운 금융 환경에 직면했다. 도대체 삼성페이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웨어러블로 결제가 이뤄지는지, QR코드가 무엇인지 두려움에 빠진다. 이는 결국 디지털 불완전 상품 연계로 이어지고, 엄청난 분쟁 사례를 야기한다.

◇책임소재 발생 땐 금융사가 입증해야

금융당국이 추진하려는 디지털 소비자 보호 정책 핵심은 책임 입증 문제다.

과거 카드 결제 도용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내 카드가 갑자기 콜롬비아에서 결제됐는데, 당시 법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소비자가 100% 해야 한다. 카드사는 입증을 하기 전까지 아무런 책임이 없다.

모바일 월렛과 IT기반 송금, 간편결제가 등장하면서 또다시 문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용역보고서 핵심은 이 같은 책임 소재를 소비자가 아닌 금융사가 입증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십수년간 이어온 규정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한국은 금융업권별로 법이 상존한다. 다양한 금융 서비스가 융합되고 '컬래버레이션'되고 있지만 이를 규율할 수 있는 법 체계는 열거주의를 채택한다. 대표 사례가 P2P 대출이다. 대출 서비스와 투자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지만 이를 규정할 수 있는 법체계는 사실상 없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이 업권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로보어드바이저를 금융사가 속속 채택하고 있다. 내 자산을 늘리는 자문서비스 관련 디지털 규정은 전무하다. 정부 노력에도 깨알 같은 불공정 약관은 그대로다.

업권별 법 적용을 받지 않는 금융서비스 기업도 다수가 등장했다. 이들에게 금융산업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설명의무 수준을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공시와 고지, 설명의무를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대면 서비스는 디지털 기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정보가 제공된다. 서비스도 복잡하다. 또 빅데이터 활용으로 소비자에 대한 마케팅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어떠한 고지와 설명도 듣지 못한다. 이는 소비자의 편향적인 의사결정 형태로 나타난다.

때문에 입증 책임을 금융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사고 또는 범죄 유형을 제한적으로 열거한다. IT 발달로 미처 고려하지 못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한다. 사로나 범죄 유형도 포괄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려면 책임소재 유무를 금융사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 계약·결제 방식, 모든 게 바뀌는데….

디지털 금융 환경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상품 계약부터 결제 방식이 송두리째 변하고 있다.

음성과 홍채, 지문이라는 생체인식 기술 등장으로 새로운 인증체계가 출현했다. 계정에 접근하거나 제품,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을 바꿨다. 소비자가 전화번호만을 사용해 개인 대 개인으로 결제한다.

결제방식도 모바일 사용이 증가하면서 과거 직불카드, 신용카드를 웨어러블, 모바일POS, 근거리무선통신(NFC), QR코드가 빠르게 대체한다. 조만간 분산원장 방식인 블록체인 기술 기반 스마트 계약 환경도 도래한다.

투자 방식은 로보어드바이저가 대체했다.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AI가 추출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리밸런싱(재구성), 운용한다. 돈을 불리는 방식도 자동화된 것이다.

금융상품이 개별 타기팅되고,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 행동, 선호도에 대한 통찰력이 가미된 상품을 추천하는 수준까지 왔다.

하지만 디지털 서비스 구현에 동반하는 보안, 사기 도난, 유출 문제는 기존 금융법을 따르고 있다.

보안 시스템 문제로 개인데이터나 기록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 소비자 데이터 도난 문제로 이어진다.

디지털 금융 확대와 함께 이제 정부는 여러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소비자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고령층, 장애인 등에 대한 편익 증대방안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같은 개선 방식은 연령과 장애 등급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금융상품과 서비스 이용 시 나타날 수 있는 IT 취약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금융전문가는 금융당국이 나열주의 방식인 체크리스트 규제안을 과감히 없애고, 디지털 분야에도 감독 체계를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