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규표(管中窺豹)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대롱 속으로 표범을 본다는 뜻이다. 전체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얼룩점 하나만 보게 된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전자서명법 개정 관련 토론회는 흡사 법학 토론회를 방불케 했다. 현행법에 규정된 '서명자가 당해 전자문서에 서명했음'과 개정안에 규정된 '서명자가 전자문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과연 같은지 다른지를 두고 청중까지 해석을 놓고 씨름했다.

물론 법률은 국민에게 명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 소재도 적정하게 규정돼야 한다. 법 개정에 있어 이를 위한 논의는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과연 법의 취지보다 문구 하나에 매달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현재 추진되는 전자서명법 개정 과정은 주객이 전도돼 보인다. 국민은 그동안 액티브X와 실행 파일 등에 기반을 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느라 불편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는 한편 다양한 인증 수단을 도입해 관련 산업과 시장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당해'라는 일본식 표현이 쓰이기는 하지만 법 조항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되고 지능화되는 각종 기기와 서비스 인증은 어떻게 할지, 공인인증서가 독점적 지위를 해제하더라도 대기업 위주로 또 다른 독점이 나타나진 않을지. 이번 개정과 관련해 다양한 논의거리가 있었음에도 작은 문구에 매몰돼 언급만 되는 수준에서 그쳤다. 물론 토론회 주최 측의 꼼꼼한 대응도 아쉽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공청회에서 주로 거론된 법 해석 문제는 이미 충분히 검토했고, 관련 기관 간 협의도 마쳤다고 한다. 최근 열린 토론회는 단어 하나하나의 해석에 시간을 소모하는 통에 다른 주제에 대한 토의나 질의응답 시간도 충분히 갖지 못하고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전자서명법 개정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아직도 법은 개정하지 못했고, 공인인증서는 여전히 쓰인다.

정보기술(IT) 발전이 나날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시대다. IT 관련 법률 개혁을 추진하면서 대롱 속으로 표범을 바라볼 여유는 우리에게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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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동현기자 pa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