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D램 메모리 반도체 업체 난야테크놀로지가 올해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지난해보다 50% 줄인다고 발표했다. 메모리 경기가 꺾인 가운데 메모리 업체로는 처음으로 밝힌 투자 계획이 매우 축소된 규모로 잡힌 셈이다. 메모리 공급 과잉을 우려, 투자 위험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D램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대로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대조를 보였다. D램 하강 국면을 발판 삼아 한국 메모리 업체가 초격차 전략을 구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6일 타이베이타임스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난야는 “세계 경제와 미-중 무역 분쟁 영향으로 지난 분기부터 D램 수요가 급락했다”면서 “올해 신규 장비 구입에 106억대만달러(약 3800억원)를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난야는 지난 15일 2018년 4분기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투자 계획을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106억대만달러는 지난해 난야가 집행한 설비투자액(204억대만달러)의 절반에 그치는 금액이다. 수요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을 조절하고, 가격 방어와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리페이잉 난야 사장은 “4분기 D램 가격이 10% 후반대로 떨어졌고 1분기에도 10% 하락이 예상된다”면서 “아직 바닥을 찍었다는 신호는 찾을 수 없어 올해 상반기까지 시황을 침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D램 업계에서 투자 축소 계획을 공개한 건 난야가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콘퍼런스콜 등을 통해 올해 투자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구체화한 수치까지 공개하지는 않았다. 난야의 투자 감축 발표는 반도체 경기 둔화 신호를 그만큼 선명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는 난야와 다른 기류가 읽힌다. 반도체 수요 증가가 예상돼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투자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참모들과 함께한 티타임에서 “15일 최태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알려진 것과 달리 반도체 시장 전망이 밝더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반도체 값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이지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 것이라고 말하더라”면서 “그래서 반도체 투자, 공장 증설 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경제수석이 좀 챙겨 보라”고 지시했다.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4분기 실적은 큰 폭의 감소가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 D램 시장을 이끌고 있는 두 수장은 최근 반도체 둔화가 가격 하락에 따른 일시 현상일 뿐 수요가 지속해서 늘어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최고경영진의 투자 의지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어느 시점부터 실행을 구체화할지 관심이 쏠린다. 올해 D램 업황은 '상저하고' 패턴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투자를 지연시켜 올 상반기 업황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반기 반등과 내년 시장을 위해서는 이제부터 투자를 재개해야 하는 시점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요가 살아날 수 있다”면서 “국내 기업 투자는 일부 시기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기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