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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모듈 장비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면 국내 패널 제조사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장비 업계가 OLED 모듈 장비 국가핵심기술 지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변수가 부상한 셈이다.

당장 중국 광저우에 8.5세대 OLED를 투자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뿐만 아니라 추후 베트남 모듈설비 증설 투자도 영향권에 속하게 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부문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변경 안을 놓고 장비기업, 패널 제조사, 산업부, 국정원이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있어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디스플레이 전문위원회도 OLED 모듈 기술을 포함하는 안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전방기업인 패널 제조사간 의견이 상반된다. 최근 톱텍 사건을 겪은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전공정은 물론 후공정에 속하는 모듈 장비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증착, 봉지 등 핵심 전공정은 물론 3D 라미네이션, 검사 등 후공정도 점차 기술 난도가 높아지고 중요해진 만큼 후공정 장비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줄 것을 요구했다.

기술유출 현황과 산업 스파이를 모니터링하는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도 국가핵심기술에 OLED 장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으로 국내 OLED 인력이 다수 빠져나갔고 중국 패널사가 한국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기술유출 가능성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OLED 장비를 국가핵심기술로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장비뿐만 아니라 부품, 소재, 구동, 모듈조립공정을 포함한 제조 기술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당장 중국에 8세대 OLED 설비를 투자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난색이다.

만약 OLED 장비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현지에 반입하는 장비와 추후 투자할 모듈설비 모두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광저우 공장 승인이 6개월가량 늦어져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어 이 사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하면 양산 계획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불확실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부터 광저우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고 생산물량이 증가하면 현지 모듈공장도 순차 증설을 해야 한다. 이 때 정부 심의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늘어나는 생산 물량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다.

장비기업 대다수는 OLED 장비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장비 수출에 심각한 제동이 걸린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부분 OLED 장비가 수출 심의 대상이 된다면 장비의 어떤 기술 요소를 국가핵심기술로 정의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 등을 유출하면 기업에 끼친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7월 중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업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구체 기술을 정의하지 않고 시행하면 실질적으로 수출을 가로막는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중국 현지에 우리 정부의 이 같은 방침과 국가핵심기술 개정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현지 패널사도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한국 장비를 구매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가 없고 기술력도 뛰어난 일본 장비사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게 국내 장비 업계 중론이다.

국내 장비 업계 관계자는 “한국 장비가 없어도 중국 패널 공장은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 장비사와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데 정부의 새로운 방침이 규제 효과를 낳아 스스로 성장 기회를 잃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 장비기업 대표는 “중국이 빠르게 디스플레이 기술을 성장시킨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삼성·LG에서 일하다가 중국으로 넘어간 많은 전문가들”이라며 “정작 기술유출 통로가 된 건 '사람'인데 엉뚱하게 '장비 수출' 탓을 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기업 대표는 “한국 OLED 장비가 일본 캐논도키만큼 확고한 기술 경쟁력이 있는지 면밀히 평가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논도키는 세계 6세대 OLED 증착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글로벌 장비 기업이다.


그는 “한국 장비사 중에 캐논도키 수준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있는 회사가 있다면 정부 심의가 아무리 지연되더라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당장 한국 장비를 대체할 쟁쟁한 일본 장비는 얼마든지 많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