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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

'글로벌 시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시대 도래를 알리는, 이젠 아주 익숙한 키워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경쟁 사회에서 자라온 우리는 곳곳에서 한계를 느끼고 좌절감을 느낀다. 나이 차이를 떠나 무력감과 괴리감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규제, 갑질, 가짜뉴스, 집단행동 등 우리 주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소식은 과연 대한민국이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에 잘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마디로 모든 게 엉망이다. 그러나 이는 '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몸부림이라고 생각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개선돼야 하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막막하다.

급속한 문명 발전은 예전보다 더욱 편리한 효율 환경을 가져 왔다. 고속열차,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덕에 예전에는 서울에서 1박2일 일정이 기본이던 부산이나 광주 출장은 당일치기가 기본이 됐다. 즉 많은 시간을 고속열차 덕에 절약하게 돼 우리 삶과 시간 여유는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실상은 시간 여유가 더 없어진 것 같다.

스마트폰을 통한 각종 예약, 버스 이용, 원격 업무 처리 등 효율성은 극대화됐지만 각자 삶은 더욱 빠듯해지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가 됐다. SNS 확산은 우리 모두를 연결해서 소통과 대화 기회가 더욱 많아졌지만 실제 느끼는 소통 가치는 오히려 낮아진 것 같다. 예전에 자주 쓰던 “눈빛만 봐도 안다” “이심전심이다”란 말들이 무색할 정도다. 바로 답글이 안 달리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찻집에서 약속시간에 나가 한두 시간 기다리던 시절이 생각난다. '혹시 사고가 났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못 오는 건가?' 생각하다가 상대가 나타나면 화도 나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기만 하던 기억들.

올해부터 강제 조치로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자 한 번 더 큰 변화가 우리 주위에 생기는 것을 목도하며 착잡한 마음이 든다. 원래 정상인데 강제로 해야 이런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우리의 현실에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다. 각종 도구나 장비가 스마트하게 되는 것 이전에 우리 생각이 스마트해져야만 문명 발전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말로는 우리가 그나마 복 받은 세대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주변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도 쌓았지만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미안해 하면서도 안타깝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나'라도 살아 있어야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지는 것 같다. 직업상 정보기술(IT) 관련 업종에서 선배로서 꼭 한 가지만은 해소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주52시간 근무제가 내년부터 적용되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IT 협력 업체 인력에 대해서도 근무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도록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주52시간 근무제 의무 적용 기업은 협력사 직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라는 지침을 내려 주면 된다. 물론 계약된 발주 내용 완결성을 위해서는 단가 계산부터 다시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는 반어법으로 얘기하면 이전 대가 계산이 잘못돼 왔다는 것이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준비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에서도 다섯 가지 혁신안 가운데 SW 개발자 원격 개발 허용 내용이 있는데 원래는 'SW 개발자 상주 금지'로, 단순하고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시장에서 필요하고 중요하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세계에서 경쟁력으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은 창의 산업이다. 미래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서는 납득이 안 되고 해보지 않은 몇몇 시도를 과감하게 추진해 주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현안과 정책 필요성이 많겠지만 굳이 딱 하나만을 제언하라고 한다면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에서 협력 회사도 같은 조건을 준수하고, 나아가 SW 개발자 상주 금지를 당연시 하는 결단이 대한민국 창의 산업을 긴 음지에서 깨어나게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이사 khhkhh@kcub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