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인 '범정부 을지로위원회' 신설 계획이 오리무중이다. 소관 부처가 관련 규정을 만들어서 부처 의견 조회까지 마쳤지만 1년이 넘도록 아무 진전이 없다. 최근 열린 총리 주재 회의에서도 관련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정부 차원에서 갑을 문제 해결 의지가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회 설치는 대통령령에 의한 것으로, 국회 동의와 관계없이 정부가 추진하면 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신설된다 해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을지로위 신설은 정권 출범 초기부터 여당이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을지로위원회와 역할 중복 문제가 제기됐다. 이를 확대 공식화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런 시도마저 쉽진 않았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해 정부가 위원회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곳을 신설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계획은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을 너무 쉽게 폐기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수많은 위원회 설립을 지켜봤고, 다음 정부에서 기존 위원회가 사라지는 것도 목격했다. 위원회는 새로 출발하는 정권의 상징성을 담아 왔다. 그만큼 새로운 비전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고 출발한다. 그러나 수없이 출범한 위원회 가운데 성공한 곳도 찾아보기 어렵다. 5년 시한부 조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연한 절차다.

국가 정책은 정권의 성격을 반영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 여부다. 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기존 정부 조직 내에 녹여 내는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을지로위 설치 무산이 아쉽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