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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팀이 게임 월드컵으로 불리는 '롤드컵' 예선에서 모두 탈락했다. 경기력 문제뿐 아니라 정체된 e스포츠 산업 진흥 정책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스포츠는 게임산업과 함께 빠르게 변화했다. 그간 게임산업은 PC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변했다. 기업, 이용자 행태도 달라졌다. 하지만 'e스포츠(전자스포츠)진흥에 관한 법률'은 2012년 이후로 멈춰있다.

e스포츠법은 e스포츠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문화와 산업 기반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법률은 딱 한 차례 개정됐다. 7조1항 '실시하여야', 7조2항 '사업자'를 '매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여야'와 '공공기관·사업자'로 바꾼 것이 전부다.

법률에서 진흥을 위해 설치하려던 'e스포츠진흥자문위원회'는 4년 동안 구성을 미루다 결국 정부가 16년 12월 폐지를 입법 예고했다. e스포츠산업 규모를 고려할 때 e스포츠 진흥에 관한 정부위원회를 별도로 구성·운영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였다. 운영도 해보지 않고 필요 없다고 했다. 태생부터 구색 맞추기식 법이었던 셈이다. 이조차도 국회 계류 중이다.

실질적 진흥을 위한 법 개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서 구체적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두 차례 발의했지만 기약 없이 계류 중이다.

e스포츠 업계 목소리를 모으고 정부, 국회에 로비를 해야 할 이익 단체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대한체육회 가맹 요건을 맞춰 국가대표 선수를 파견하는 것도 버거워했다. 중국 알리바바가 아시아올림픽 평의회와 파트너십을 맺어 e스포츠를 시범, 정식 종목화 시도하는 것과 대조된다. 이스포츠법 개정을 위해 해야할 역할에도 소극적이다.

e스포츠는 한국 게임산업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간판이었다. 지금 유튜버나 BJ처럼 초등학생이 가장 되고 싶은 직업일 때도 있었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고급 일자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한국이 어디인지 몰라도 e스포츠를 잘한다는 인식이 세계에 퍼졌다. 첨단 국가로 이미지를 만드는 첨병이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셧다운제' 이후 게임은 규제해야 될 유해물로 인식됐다. 콘텐츠 수출 선봉장에서 중독 물질로 전락했다. 이제는 일각에서 게임장애를 중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체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리터러시 교육 등으로 물꼬를 트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목소리가 높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국무조정실이 모순, 충돌하는 정부부처 간 게임 관련 정책을 해결해줘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며 “e스포츠법도 협회 등 민간에서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야 정치권이 관심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산업 진흥 희망도 현재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게임학회가 산업·학계·언론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체부 게임 정책은 100점 만점에 44점에 불과했다. e스포츠 부문은 54.4점이었다.

이동섭 의원은 “대통령이 후보시절 게임진흥 의지를 밝혔다”며 “취임 후 아무 말 없고 의지도 없어 보인다. 게임산업과 e스포츠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업계는 '물 들어올 때 노저으라'는 말처럼 제도와 법을 보완할 적기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문체부는 내년 e스포츠 상설경기장 구축에 66억원을 투입한다. 생활 속 e스포츠 저변을 확대하고 지역민 콘텐츠 향유기회를 늘리는 취지다. 수도권을 제외한 5대 권역별 1개소씩 지역에 5개소를 조성한다. 기존 경기장, 공연장, 문화 시설 등에 e스포츠 경기에 적합한 시설을 갖춘다. 규모는 300석 이상으로 구축한다. 상설 e스포츠 경기시설은 국내 정규대회, 지역 방송국 등 미디어와 연계하는 아마추어 동호인 대회 개최에 사용한다. 대회가 없는 기간에는 시민 참여형 콘텐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 e스포츠 인프라 투자도 이어진다. 액토즈는 10.2채널 서라운드 입체 음향 시스템을 적용한 e스포츠 경기장을 건립했다. 2년 내 e스포츠 사업에 1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아프리카TV는 주요 거점 도시에 9개 오픈 스튜디오를 개장했다. 컴투스는 '서머너즈워 월드 챔피언십'을 진행하며 경기에서 축제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또 게임사 넵튠은 게임단 콩두컴퍼니에 95억원, 중 채널 네트워크(MCN) 샌드박스네트워크에 110억원을 투자했다. 카카오게임즈는 e스포츠와 MCN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넵튠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와 DS자산운용은 e스포츠 전적데이터 서비스 기업 오피지지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업계 관계자는 “헤게모니가 중국, 미국으로 넘어갔다”며 “민간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회복할 관련 법, 제도가 보완돼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표> 20대 국회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 현황

[이슈분석]말로만 진흥하는 'e스포츠법'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