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에 게임장애정신질환을 등재하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게임을 담배나 술과 같이 질병을 유발하는 유해물로 보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찬반 공방이 뜨겁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WHO가 게임장애 질병 코드를 등재하면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이해당사자간 갈등 조짐마저 보인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강도 높은 규제도 뒤따를 전망이다. 현재 술이나 담배에 부과하는 치유부담금이 게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카지노·경마·경륜·복권 등에 순매출 0.35%를 도박중독예방치유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게임도 이들 중독질병산업으로 분류되면 비슷한 규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문제는 WHO가 추진하는 게임장애정신질환은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학적 근거가 부족해 의학계에서도 이를 질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존스홉킨스대, 호주 시드니대 등 정신건강·사회과학 분야 36명은 임상심리학 학술지 '행동 중독 저널'에 WHO 방침을 정면 반박하는 논문을 투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게임과몰입이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최근 스마트폰 이용자는 게임 이외에도 소셜네트워크나 동영상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는 추세다. 이들도 게임과 비슷한 과몰입 잣대를 적용하면 질병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모두 끊고 살아야 한다는 비현실적 결론이 나온다.

게임이 질병이라는 결론은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이뤄진 뒤 내려져야 한다. WHO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이런 와중에 복지부가 무턱대고 WHO 방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WHO 결정과 별도로 국내에 적용하려면 충분한 검증과 관련부처의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게임은 질병이라는 성급한 결론이 한류 주역인 한국 게임산업을 스스로 옭아맬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