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화 폭락에 마지못해 금리를 올린 터키가 추가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8월 외환위기 여파로 소비자 물가가 25%나 치솟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터키가 금리인상 적기를 놓친 탓에 현재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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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터키 9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대비 24.5%에 달했다. 외신은 지난 8월 리라화 폭락세가 이번 물가상승률에 반영됐으며, 이달 25일 터키 중앙은행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인상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했다. 터키 물가상승률은 지난 6월부터 4개월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에 터키 정부는 기업들에 연말까지 제품 가격을 10% 내릴 것을 요청했다. 리라화 가치를 올리는 대신 물가를 억제하는 데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리인상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를 '채무불이행(디폴트)' 코 앞까지 몰아넣었다고 진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8월 리라화 폭락 당시에도 “내가 살아있는 한 금리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하게 발언했으며, 9월 터키 중앙은행 금리인상 발표 전에도 “이렇게 높은 금리를 내려야한다”며 상반된 주장을 했다.

한국은행 국제국 관계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물가 상승세를 금리 탓으로 돌리며 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투자자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며 “올해 4월부터 미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자 신뢰도가 낮은 터키 통화 가치가 급락했다”고 진단했다.

아르헨티나도 고물가에 대응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터키 금융불안이 전이되며 페소화가 크게 떨어진 후에야 뒤늦게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45%에서 60%까지 급격하게 올린 탓에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부작용을 낳았다.

신흥국 불안이 이어지자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다. 미 달러화 강세 및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다.

통상 미국 채권은 안정성이 보장됨에 따라 신흥국보다 낮은 금리가 책정됐다. 소위 미국 채권은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신흥국 채권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최근 달러화 강세로 미국 장기 채권 금리가 3%를 넘게 됐다. 위험성은 낮으면서도 이자까지 높기 때문에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것이다.

중국에도 최근 '비상'이 걸렸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마지노선인 7위안을 목전에 뒀다.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투입해 위안화 가치 하락을 통제하고 있지만, 미국이 올해 12월과 내년 추가로 금리를 올리면 약세 압력이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 유출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의미다. 또,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약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올해 중국은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지급준비율을 네 차례나 인하했다. 지급준비율은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중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을 말한다. 이를 낮추면 시중 통화량이 증가하게 된다.


딩솽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대출금리를 0.05%포인트(P) 정도 인상하더라도 중국 실물경제에 주는 타격은 크지 않고 환율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