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한국 전자 산업계 핵심 제조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는 하노이 북쪽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에 각 스마트폰 공장을 두고 전체 스마트폰 생산량 절반을 베트남에서 만든다. LG그룹은 베트남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을 전략 거점 삼아 TV·스마트폰·세탁기·청소기 생산 규모를 늘린다. 1990년대부터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설립한 LS그룹은 현재 LS전선, LS산전, LS엠트론이 각 하이퐁, 하노이, 호치민에 생산기지를 뒀다.

베트남이 제조업계 중요 생산기지로 부상한 이유는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노동력 때문이다. 베트남은 인구가 1억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 65%가 35세 미만으로 젊다. 노동력 질이 높으면서 인건비는 중국 3분의 1 수준이다. 다수 기업이 중국에서 공장을 철수하고 베트남으로 옮기는 이유다.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하는 '세계 공장'으로 변모한다. 베트남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내 생산기지로만 여겨졌던 베트남 역할은 더욱 확대, 발전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 모바일 R&D센터를 가다

하노이 중심가에 위치한 PVI타워. 지난 12일 찾아간 이곳에는 삼성전자 모바일 연구개발(R&D)센터가 있다. 삼성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각종 소프트웨어(SW)와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센터는 건물 26개층 가운데 10개층을 임대할 정도로 많은 임직원이 근무한다. 전체 2000여명 임직원 중 95%를 넘는 인력이 현지인이다.

삼성전자 모바일 연구개발센터는 놀라웠다. 규모도 놀랍지만 베트남 내 연구개발센터가 SW를 개발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베트남은 그동안 제조업에 유리한 곳으로만 알려졌기 때문이다.

삼성은 베트남에 세계 최대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건립했다.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 공장 두 곳에서 만들어지는 스마트폰은 연 1억5000만대에 달한다. 삼성 스마트폰 생산량 절반을 베트남이 책임진다. 낮은 인건비와 양질 노동력때문에 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다.

현지서 본 베트남은 제조기지가 전부가 아니었다. 삼성전자 모바일 연구개발센터 관계자는 “초기에는 동남아 지역 현지 사정에 맞게 언어나 프로그램을 현지화하는 작업을 주로 했지만 지금은 기술력이 발전해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업그레이드를 지원하는 업무나 빅스비 베트남어 버전 개발과 같은 비중 있는 작업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최근 모바일 센터에는 새로운 팀도 생겼다고 소개했다. 태블릿 하드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이 구성됐다. 층을 이동해 들어간 태블릿 개발 사무실에는 계측기 등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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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베트남 모바일 연구개발센터 사무실 모습. 삼성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들이 이곳에서 개발된다.(제공: 삼성전자)

◇R&D를 만드는 기업들

베트남 연구개발 능력에 주목한 건 비단 삼성뿐이 아니다.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캠시스는 최근 1년 사이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모두 옮겼다. 카메라 모듈에 이어 중국에 있던 전장 제품 생산라인까지 베트남으로 통합했다. 회사는 베트남에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 월 1200만대, 자동차에 장착되는 전장 카메라는 월 1만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최근 캠시스는 여기에 특별한 기능을 부가했다. 베트남 법인 내 R&D센터를 구축했다. 주재원 4명과 현지인 7명으로 시작한 R&D센터는 현지인을 추가 보강해 현재 96명으로 늘어났다.

김순영 캠시스 베트남법인 관리담당 이사는 “주력 제품 카메라 모듈은 사이클이 짧은 IT 제품 특성상 개발부터 양산까지 기간이 단축됐다”면서 “개발 후 양산까지 조기안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시설이 있는 베트남에도 개발 인력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쇼핑 업체 티몬도 베트남을 온라인쇼핑 R&D 전진기지로 낙점했다. 현지 우수 SW 개발자를 확보해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다. 티몬은 2016년 5월 베트남 연구소를 설립하고 인력을 확대한다. LG전자는 하노이 대표 빌딩으로 불리는 랜드마크72에 R&D센터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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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모듈 회사인 캠시스도 베트남에 R&D센터를 만들었다. 사진은 연구소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제공: 캠시스)

◇풍부한 인력과 잠재력 있는 엔지니어 배출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 R&D센터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사마다 구체적 사정은 다르겠지만 결론부터 정리하면 잠재력 있는 인재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박승현 티몬 베트남사무소 소장은 “커뮤니케이션과 개발 능력이 우수한 엔지니어 인력이 베트남에 많다”면서 “그동안 글로벌 전자기업 생산거점 역할을 수행한 베트남이 점차 R&D 센터로도 주목받는다”고 말했다.

2015년 실시된 세계경제포럼 조사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한해 배출되는 공대생은 10만명에 달한다. 베트남 인구 대비 0.1%에 불과한 숫자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세계 상위권에 드는 규모다. 같은 통계에서 상위권에 드는 우리나라는 14만명을, 프랑스는 한해 10만명의 공대생을 배출한다.

물론 이들이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학 교육 질에서도 나라마다 차이가 난다. 교육과 투자를 통해 육성하면 충분한 발전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삼성전기 베트남 법인 관계자는 “기술 관심이 높고, 무엇보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강하다”면서 “흡수력도 빠른 게 베트남 인재 강점”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베트남 관계자도 “베트남은 학구열이 높은 나라”라면서 “조기 유학생도 있고, 실력 있는 인재가 많아 빠른 시간 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인건비 역시 무시 못 할 요인이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에 입사하는 대졸 신입 엔지니어 월급이 1100만동이다. 1100만동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53만원이다. 이 같은 금액도 베트남 내 다른 기업보다 10~15% 많은 수준이다. 경제규모 등이 달라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국내 대졸 초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대학에 커리큘럼을 만들고, 연구소를 지어주며 현지 인력을 육성해도 여력이 생기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우수 인력 유입은 제조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다.

우수 인재가 배출되는 베트남이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재 유치 어려움도 점점 커진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아직 심한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기업이 성장하고, 인재가 창업에 눈을 떠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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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경제포럼 통계를 근거로 포브스가 작성한 나라별 공대생 배출 규모표. 중국과 인도는 데이터가 없어 빠져있는데, 베트남이 상위권에 속해 있다.(자료: 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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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베트남 투자 추이(자료: KOTRA)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