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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

연이어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지고 있다. 침대에서 발암 물질인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돼 잠도 편히 못 자겠다는 불안에다 주행·주차 가릴 것 없이 자동차에서 화재가 나는 사고가 연이어 뉴스를 장식하는 등 자동차를 타고 있어도 안심하기 어렵다.

소비자 안전 문제가 터질 때마다 보상이나 처리는 더디고, 원인 규명도 어려우며, 사업자 처벌은 미약하다. 피해가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일상이 불안하다.

우리나라에서 소비자보호법이 1979년에 제정되고 이듬해인 1980년에 시행됐으니 국가와 기업에 소비자 보호 의무를 부여한 지 40년이 넘고 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는 경제 발전이 최우선 되는 시기여서 말뿐인 소비자 보호였다고 하더라도 2018년 지금은 어떠한가.

경제력과 정보력이 막강한 기업은 그동안 더욱더 치밀해졌고, 소비자 보호를 앞세우곤 있지만 실상은 팔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소비자를 무시하기 일쑤다. 소비자와 사업자 간 힘의 균형은 너무 기울어져 있지만 집단소송제나 징벌성 손해배상 제도 같은 소비자 보호 대책도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소비자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부에 문제 해결과 대책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우리 경제는 세계화됐다. 세계 10위권 시장으로서 국산 제품만 염두에 둘 수 없는 시장이며, 정부 규제만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소비자보호법'을 '소비자기본법'으로 바꾸면서 소비자 정책 목표를 소비자 보호에서 소비자 주권으로 전환한 지도 10여년이 됐다. 그동안 소비자 정책은 소비자 주권 실현을 위해 소비자를 조직화하고, 선택에 필요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소비자 교육 등을 통해 소비자의 자주 능력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이를 위한 실질 지원이나 투자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소비자 권익 증진 활동 지원 방안으로 2~3년 전부터 소비자 권익 증진 및 소비자 활동 지원·육성을 위해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을 설립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소비자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상담·분쟁조정·소송 등을 위한 지원, 피해 예방을 위한 교육·홍보 및 연구·조사, 소비자의 합리 선택에 필요한 정보 제공을 위한 지원 등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대선 공약에도 언급된 사안이다. 현재 국회에도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으로 몇 개 법안이 제안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다시 최근의 대형 소비자 안전 사건을 되돌아보면 피해 소비자에 대한 원활한 상담과 피해 조사, 소송 지원, 문제 원인 조사 등을 위한 기금이 마련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더욱이 소비자 문제 예방을 위해 선진국 수준 상품 비교 테스트와 활발한 조사 연구, 소비자 정보지 발간 등을 통한 소비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빈약한 소비자 운동 기반이나 소비자 정책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소비자 보호는 사업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 발전의 전제라는 인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소비자 권익을 증진하는 활동의 재원은 이해가 얽혀 있는 기업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소비자 개개인 스스로가 아니면 정부 지원이 필수다.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가 소비자 보호 활동을 국가 재정으로 전격 지원하는 이유다. 소비자권익증진 기금의 조속한 설립으로 우리나라 소비자의 실질 권익을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강정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 consum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