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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형이상학'을 썼고, 칸트는 18세기에 법·덕·윤리학을 묶어 '윤리 형이상학'을 주장했다. 플라톤 근본 물음은 “인간의 정치 공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이며, 이것을 통해 보장되는 평화”라고 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거기에 “자유가 최고의 정치적 선”이라고 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에서 '자유'를 책임지는 인간의 행동 방식으로 '윤리'를 말하고 있다.

21세기 세계 모든 곳곳에서 정보를 동시에 공유할 수 있게 된 디지털 시대에 윤리와 형이상학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윤리란 이성의 법칙에 따라 자유를 사용하는 능력과 권리다.

미래학자 게르트 레온하르트가 쓴 '기술 vs 휴매니티'를 '신이 되려는 기술'로 번역하면서 '위기의 휴매니티'라는 부제를 달았다.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윤리와 도덕이 '인간성(휴매니티)'을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지능(AI)과 딥러닝으로 인간과 점점 같아지는 기계가 나오는 시점에서 기계에 인간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아니면 인간과 기계는 영원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존재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면서 레온하르트는 우리 시대에 15개 디지털 윤리, 즉 기계의 '디지털 윤리 형이상학'을 주장했다.

창의성·독창성·상호성과 공감 없이는 '융합인재교육'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기계에서 찾을 수 없는 감정, 경이로움 발견, 영성, 우연, 불가해한 깨달음이 있고 설렘·그리움·사랑도 있다. 알고리즘과 기계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365일 일만 잘한다고 해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기 때문에 기술 진보는 인류가 지향하고 있다. 인간 중심의 정책과 표준, 디지털 윤리, 사회 계약, 기하급수적 기술의 인간화에 대한 세계적 합의가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기술이 우리 삶을 경영하게 될 때가 곧 온다. 인간이 휴매니티 청지기로 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중요한 현안에 대한 레온하르트가 던지는 질문을 우리 시대의 디지털 윤리 형이상학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뉴욕타임스 기자 존 마코프는 2015년에 '사랑할 줄 아는 기계의 은총'에서 새로운 윤리를 말했다. “낙관주의자는 AI, 유전공학, 로봇학을 연구하고 적용할 때 알고리즘보다 인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컴퓨터 시스템을 악용하는 잠재성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 산업이 도덕적 계몽을 증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만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라 해도 도덕성을 이유로 수익성 높은 기술을 거부했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기술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기초는 주로 수익성과 효율성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윤리 셈법이다.”

인간 감수성과 섬세한 정서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기술로 인간을 대체하게 된다면 과연 인간의 본성과 본질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계에는 윤리가 없다. 그러나 기계를 움직이는 인간에겐 윤리가 있다. 인간처럼 돼 가는 디지털 기술에 윤리를 물어야 한다면 그 기술을 악용한 인간과 지시한 인간은 윤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세의 '10계명'이 나온 지 3500년 만에 우리 시대의 '디지털 윤리 15계명'이 나왔다. 인터넷상 모든 행위에 대해 자유와 책임을 전 세계에 묻는 '디지털 형이상학'은 우리 시대의 디지털십계명이 될 것이다.

백양순 한국ICT융합협회장 bys8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