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갈등이 확산되면서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재점검이 요구된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축인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득주도성장 보완책으로 혁신성장 정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매년 극심한 갈등을 야기하는 최저임금 인상 결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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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 논의 기간에 전원회의에 전원 불참하고 따로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사진:중소기업중앙회)

◇최저임금부터 삐그덕, 소득주도성장 궤도수정 불가피

내년 최저임금이 10.9% 인상되면서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경영계 우려가 높다. 현 인상 수준만으로도 갈등이 격화되고, 폐업을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때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가정 아래 올해와 내년 인상 폭을 같게 잡으면 이번에 최저임금을 15.2% 인상해야 하는데 못 미쳤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주된 동력 중 하나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하고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방침이었다.

기대와 달리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 부작용이 나타났다. 일자리 지표는 오히려 악화됐다. 소득주도성장 출발점인 최저임금 인상이 당초 목표에 미달하면서 정부 정책 추진력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소득주도성장 속도조절론은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소득이 2003년 이래 최대 폭으로 줄어들어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본격화됐다. 저소득가구 소득을 끌어내린 주된 요인이었던 임시·일용직 고용 악화가 최저임금 인상 영향인지를 두고 정부 안팎에서 논란이 됐다.

1분위 가구의 이전소득이 1분기 근로소득을 처음으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재정에 의지해 저소득가구 소득을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회의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증가 폭은 6개월 연속 10만명 안팎에 머물러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였다. 지난달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가 최대 8만4000명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연말 자영업 연쇄 폐업사태 우려까지 나온다.

소득을 올려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채용 확대를 요청하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제성과가 없어 너무 초조하다”고 발언한 것이 이런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당초 계획보다 다소 늦추되 근로장려금(EITC), 노인연금 등 노인가구를 중심으로 심화한 저소득가구의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부 정책기조 달성을 위해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궤도수정과 더불어 규제혁신과 기업의 투자촉진, 혁신창업 등을 적극 추진하는 혁신성장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규제개혁 관련 회의를 개최하며 혁신성장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기조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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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절실

최저임금 협상이 또 한번 극심한 사회 갈등을 일으키면서 이를 계기로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익위원을 정부가 임명하고 대기업 노사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높아지자 '을(乙)의 전쟁'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임위가 조정과 타협 기능을 상실한 채 저임금 근로자와 소상공인의 싸움터가 돼버린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최임위는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그리고 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총 27명이 참여한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노·사·공 모두의 합의에 따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2009년 단 한 번 뿐이다. 매년 사용자와 근로자위원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파행이 반복됐고,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올해도 사용자위원 전원이 보이콧 하고 근로자위원 중 민주노총 위원 4명이 불참하면서 최종 결정 테이블엔 공익위원 9명과 근로자위원 5명만 투표에 참여했다. 결국 공익위원안이 채택됐다.

문제는 공익위원이 정부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정권 성향에 따라 결정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공익위원을 정부가 위촉하다 보니 바뀌는 정권의 '방향타'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친노동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는 친노동계 인사로 공익위원 자리를 채웠다. 올해 임명된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일자리혁명위원회'에 참여한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노총 정책본부 출신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문재인 캠프 '일자리위원회'에서 일한 김혜진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등으로 구성됐다. 이렇다 보니 고용 충격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문 대통령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감안해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밀어붙였다.

근로자위원 9명을 정규직 중심의 양대 노총이 추천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용자위원 9명 중에서도 소상공인 대표는 2명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에 생존권이 걸린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은 이들 2명뿐이다. 저임금 근로자와 소상공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을 사실상 정부와 대기업 노조 세력이 결정하는 셈이다. 정부와 정치권 외압과 양대 노총 정규직 노조 정치투쟁까지 맞물리면서 독립적 의사결정 기구를 표방한 최임위가 유명무실 하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 중립성이 개편의 초점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현실적 해법이 마땅치 않다. 제3의 전문가 협의회를 통해 최임위에서 결정된 최저임금액 타당성을 재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와 같은 최임위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지난달 “최저임금 대상자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관련해 여러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자리를 마련해보겠다”고 밝혔다.



제11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명단

[자료:최저임금위원회]

[이슈분석]최저임금부터 소득주도성장 정책까지...'전면 재검토' 필요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