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레이저 연구센터가 있다. 체코 정부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200만유로(약 420억원)를 투입해 건립한 하이레이즈(HiLASE)라는 체코 과학원 산하 물리연구원 소속기관이다.

이곳에서는 60명 이상의 레이저 전문가가 다양한 특성을 지닌 레이저를 연구한다. 레이저 생성 장비 설계와 제작 및 응용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한다. 세계 각국의 연구소와 기업 등에 맞춤형 레이저를 개발, 제작해 주는 곳이다. 펄스 길이는 피코초 단위, 파장은 1마이크론까지 만들 수 있다. 평균 출력이 1㎾급에 이르는 산업용 고출력 레이저 생성 장비도 갖췄다. 크기가 가로 2m, 높이 2m, 길이 8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만난 토마스 모첵 센터장은 “노트북 크기의 초소형 레이저 장비를 개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꼽았다. 아직은 레이저 발생 장비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놀라우면서도 부러운 얘기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소 역사가 벌써 40년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출연연만 25곳이나 된다. 그동안 출연연이 내놓은 성과도 적지 않다. 물론 아직은 과학기술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번 하이레이즈와 체코공대 방문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랐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적어도 이들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우리보다 강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인 레이저 분야에서도 우리보다 한참 앞선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최근 내년도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확정했다. 올해보다 95억원 늘어나는데 그친 15조7810억원 규모다. 14조7000억원은 주요 사업 예산이고, 나머지 1조810억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 경비라고 한다. 연구자 중심 기초연구, 혁신성장 선도 분야, 4차 산업혁명 대응, 재난·안전 분야 예산을 늘리는 대신 다른 분야는 대폭 삭감했다.

평년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예산 증가율은 정부가 그동안 강조해 온 과기 육성 의지와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혹시나 연구 환경 개선 또는 확충을 위한 인프라 구축 예산이 있나 들여다 보았다. 지역선도연구센터 3개소 설립에 34억원을 투자하는 것이 전부로 보인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출연연에 변화와 혁신을 요구해 왔고, 연초에는 정부 주도로 '출연연 발전 방안'도 마련했지만 정작 연구 효과를 높일 연구환경 조성에는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물론 출연연을 설립할 때는 인프라부터 구축한다. 지금쯤이면 웬만한 설비는 모두 갖췄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노후 설비다. 출장길에 만난 출연연 실장급 연구원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나노 연구를 하는데 연구실이 마이크로급으로 흔들립니다.” 물론 심한 과장을 섞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큰 성과를 바라면서도 연구환경 개선에는 인색한 현실을 상당 부분 반영한 비유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과기분야 투자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출연연 예산은 꼭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 연구원들이 연구에 매진할 환경부터 마련해 주는 것이 먼저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