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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라인]'불타는 플랫폼'에서 탈출하는 법

발행일2018.07.0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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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가 북해 석유 굴착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밤 요란한 폭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시추 플랫폼이 화염에 휩싸였다. 사내는 삽시간에 불길에 갇혔다. 아래를 내려 보니 깜깜한 얼음 바다다. 불길이 닥쳐온다. 시간이 없다. 평소 같으면 바다로 뛰어내릴 생각을 결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랫폼에 버티고 서 있으면 불길에 타 죽는다. 사내는 뛰어내렸다. 구조를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플랫폼이 불타고 있었기에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2011년 노키아 스테펜 엘롭 CEO가 직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스마트폰 혁명에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이 침몰하는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노키아를 '불타는 플랫폼'에 비유했다. 직원에게 플랫폼에서 뛰어내리는 과감한 행동을 요구했다. 구조 받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거함 노키아는 결국 심해로 가라앉고 말았다.

7년이 흘렀다. 플랫폼이 또 불탄다. 북해가 아닌 대한민국이다. 디스플레이, 휴대폰, TV 등 핵심 기업에 불길이 사납게 번진다. '중국 굴기'가 발화 지점이다. 디스플레이 대표주자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은 진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 1위 TV 시장도 타들어간다. 스마트폰 시장에도 검은 연기가 자욱하다. “애플은 살아남겠지. 그런데 삼성전자가 화웨이를 이길 수 있을까.” 곳곳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 주말 공개한 삼성전자 2분기 실적은 우려를 더했다. 휴대폰 영업이익은 1분기보다 36% 가까이 줄었다. 디스플레이는 85%나 급감했다. 반도체 하나로만 버티는 위태로운 외줄 타기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는 최악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반도체 슈퍼호황 착시에 빠진 한국경제도 불구덩이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삼성전자가 변하기 시작했다. 무선사업부는 최근 중국산에 맞서 중저가 제품 강화에 나섰다. 중저가 연구개발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값싼 중국산 부품도 과감하게 도입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에서는 중단됐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개발도 재개했다. TV사업부 역시 '마이크로 LED'라는 차세대 제품 상용화를 빠르게 밀어붙인다. 불타는 플랫폼에서 뛰어내릴 채비다. 관건은 타이밍이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경영리더십이 안 보인다. 노키아처럼 만시지탄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대기업보다 그 아래 중소기업이 더 문제다. 가격 경쟁력 때문에 삼성마저 중국산 부품을 도입하기로 한 판국이다. 우물쭈물하다간 매출 절벽 앞에 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중국산보다 기술이나 가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신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최고경영자(CEO) 용단과 직원의 과감한 변화가 절실하다. 그렇게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더라도 자본과 기술이 변변치 않은 중소기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순망치한이라고 협력사가 사라진 뒤 대기업도 혼자 버틸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보자. 노키아가 침몰할 때 삼성전자는 빠르게 불타는 플랫폼에서 벗어났다. 삼성전자는 중소 협력사 CEO들과 날밤을 새는 '대책 회의'도 불사했다. 그 결과 '갤럭시S'라는 걸출한 대항마가 탄생했다. 다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으론 쉽지 않아 보인다. 불속을 헤쳐나 갈 강한 상생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 아니면 공멸할 수 있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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