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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대표작 '열정과 기질'을 통해 '10년 주기론'을 주장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하트마 간디, 지크문트 프로이트 등 거장들을 보면 10년 단위로 창조성이 '성숙'되고 '발휘'되며, 다른 분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공자가 20세 약관, 30세 이립, 40세 불혹 등 10년 단위로 인간의 성장 단계를 구분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10년의 세월이 성숙시키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국가 간 협력도 마찬가지다. 우리 특허청이 미국·중국·일본·유럽 특허청과 함께 2008년 제주에서 '선진 5개 특허청 협의체'(IP5)를 본격 가동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5개국 전체 출원의 30%인 약 42만건이 여러 나라에 중복 출원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 간 업무 협조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각국 특허청은 서로의 심사 결과를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정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국가별로 상이한 특허 시스템으로 인해 출원인 시간과 비용이 많이 투입되고, 동일한 특허 출원에 대해 각국 심사 결과가 상이해 출원인 불편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결국 누적된 출원인 불편과 비효율 특허 행정은 IP5 협력 체제의 산파 역할을 했다. 5개국 특허청이 2008년 제주회의에서 국가 간 심사 협력이라는 비전을 공유하고 10대 기반 과제를 공동 추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IP5는 5개국 간 특허심사정보 통합조회시스템(OPD) 구축, 특허 실무 및 절차 조화, 신기술 분야의 특허 분류 체계 개편, IP5 통계보고서 발간 등 출원인의 이익 증진과 특허 행정 효율화를 위한 굵직하고 의미 있는 성과들을 창출했다.

가드너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IP5 체제는 10년의 협력을 통한 성숙 단계에서 벗어나 그 역량을 본격 '발휘'하는 새로운 차원의 협력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전면 시행되는 PCT 협력심사(CS&E)가 그것이다. 기존에는 국제 조사 신청을 받은 특허청만이 PCT 출원 특허성을 검증했지만 PCT 협력 심사는 동일 출원에 대해 5개 특허청이 공동으로 동시에 특허성을 검증하게 된다. 그동안의 IP5 협력이 지붕을 고치고 구들을 손보며 울타리를 만드는 작업이었다면 이제 새로이 단장된 집에서 생활을 본격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PCT 협력 심사가 출원인과 특허청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출원인은 동일 출원에 대해 5개 특허청의 심사 역량을 모두 활용, '강한 특허'를 창출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동일 출원에 대한 각 특허청의 특허성 판단 기준, 선행 문헌 검색 능력 등도 직접 비교·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특허청이 브랜드 이미지 상승 및 특허심사 역량 제고를 위해 이번 협력 심사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 간 협상이 대체로 그렇듯이 지난 10년 동안의 IP5 협력 과정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상이한 이해관계가 수시로 발목을 잡을 때마다 IP5라는 거대한 수레가 한 걸음 더 전진하도록 이끌어 온 가장 큰 동력은 변화를 향한 특허 고객들의 간절한 요구였다. PCT 협력 심사 또한 3년이라는 시범 사업 기간 이후 정식 사업이 진행될 때까지 여러 난관이 있을 테지만 결국 특허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보완점과 제도·절차상의 한계를 극복하며 해결점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 기업의 해외 시장 확보에 달려 있고, 그 중심에 지식재산이 있다. PCT 협력 심사가 성공리에 정착되면 우리 기업이 더욱 편리하게 해외에서 지식재산을 획득하고 국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특허청은 IP5 체제 출범과 지난 10년 동안 협력을 주도해 왔듯 앞으로 10년의 협력도 적극 이끌어 갈 것이다. IP5 협력 성과와 1개 국가의 심사 결과를 토대로 다른 모든 국가에서 특허권이 인정되는 '하나의 특허(One Patent)' 시대가 가까운 시일 안에 오기를 기대해 본다.

성윤모 특허청장 sungy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