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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규 케이그룹 대표이사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열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월드컵을 대하는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거리를 채우는 응원가도 없고, 눈에 띄는 응원 광고판이나 홍보 문구도 없습니다.

이는 유통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같았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월드컵 마케팅을 벌였을 텐데 이 또한 시들합니다. 2006년 이마트 스포츠 바이어 시절에는 월드컵 기간은 붉은악마 응원 티셔츠를 수백만 장 제작하고, 월드컵 공인구와 유니폼 레플리카의 물량확보를 위한 업무조율을 계속했었습니다. 모든 관련브랜드와도 16강 진출시 할인, 1골마다 에누리 이벤트 등 넣을 수 있는 프로모션은 다 진행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2018년 월드컵은 아직까지도 마트나 심지어 온라인에서조차도 관련된 프로모션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째서 일까요? 한 명의 스포츠 팬이자 유통인으로서 이런 변화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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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MD시절 당시 월드컵이 열리던 해는 최고의 스포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해가 됐다. 사진은 2010년 인터스포츠 MD 시절 진행했던 홍명보 선수와 김태영 선수 초청 월드컵 이벤트의 모습.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정치적 이슈와 경제·사회적 분위기, 월드컵 자체에 대한 기대감 하락 등이 주된 요인으로 보입니다.

먼저 정치적으로 보면 개막일인 14일을 앞두고 두 가지 빅 이슈가 펼쳐집니다. 바로 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입니다.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은 최근의 관련 이슈들이 계속 나오는 것에서 보듯 국내는 물론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있는 사안입니다.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죠. 여기에 개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살림을 맡아볼 장과 의원을 뽑는 6.13 지방선거도 많은 관심을 모으는 상황입니다.

경제사회적인 분위기 측면에서 보면 응원 주체인 청년층들이 빡빡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청년실업률이 역대 처음으로 두 자리 수를 넘었다고 하는데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이 문화와 스포츠 생활부터 지출을 줄여나가면서 그 관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또 SNS의 발달로 기업들도 대대적인 TV광고보다 소비자와의 직접소통을 이용한다는 점도 월드컵 마케팅의 축소를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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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MD시절 당시 월드컵이 열리던 해는 최고의 스포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해가 됐다. 2010년 인터스포츠 MD 시절 진행했던 청소년 참가 월드컵이벤트의 모습.

여기에 월드컵 자체에 대한 기대감 하락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과 2010 남아공 월드컵의 16강 진출 이외에는 월드컵 대표팀이 이렇다 할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조편성 또한 죽음의 조로 불릴만큼
힘든데다,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의 잡음과 갑작스러운 감독교체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대중을 더욱 실망케 했던 것이죠. 여기에 올해 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역사적인 대회를 치르면서 스포츠뉴스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된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업계에 있어서 월드컵은 여전한 매출향상의 기회로 여겨집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진출을 달성하면서 관련상품과 기념품이 엄청나게 팔렸었죠. '월드컵 응원복=빨간색'이라는 공식이 탄생한 비더레즈(Be The Reds) 티셔츠는 30억원 규모로 팔렸으며, 15만원에 달하는 월드컵 공인구도 30만 개 가까이 판매됐다고 합니다.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응원도구 위주의 소비가 일어난 것과 달리 보호대부터 유니폼까지 축구 보조용품의 판매가 60%이상 증가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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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KBS스포츠국 인턴시절 당시 월드컵 4강진출과 관련해 열기가 상당히 뜨거웠다. 사진은 올스타전 취재 당시 필자의 모습.

이번 월드컵특수가 가장 기대되는 곳은 푸드업계입니다. 러시아 현지와 6시간의 시차를 가진 우리나라인 까닭에, 모든 일과를 마친 늦은 저녁에 월드컵 경기들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류와 각종 먹거리 업계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TV광고만 봐도 맥주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정환 선수, 차범근 전 감독이 맥주 광고 모델로 등장하고, 월드컵 패키지 또는 신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들도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야식주문과 배달을 담당할 배달O2O는 물론 게임업계에서는 모바일 축구게임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통신사나 미디어앱을 선보이는 곳들은 모바일 중계에 쏠릴 트래픽들을 감안해 서버점검을 펼치고 있으며, 스마트폰을 활용한 응원을 위해 플래시, 글귀 앱 등도 출시될 전망입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관심이 떨어지긴 했어도, 스포츠는 물론 유통업계서는 개막 일정이 다가오고 경기가 열리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부부젤라를 활용했던 남아공 월드컵처럼 러시아 전통 악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함과 더불어 며칠 전에는 월드컵 공인구가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더군요. 또 오는 18일, 24일, 27일 저녁,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서울 강남구의 영동대로 등에서 경기 중계와 거리 응원이 펼쳐지면서 주류를 비롯해 각종 업체들이 함께 참가해 현장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에는 스포츠 용품 유통업계서 경력을 쌓았던 기업인으로서 월드컵 특수 시장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하지만 유통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팬입니다. 이번 월드컵의 성패에 대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축구 업계에서도 통감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이에 대표팀은 지난 5월 21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별도의 출정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대표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국민들의 응원이라고 하죠. 개막식과 함께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필자소개/고현규

현재 트랜드코리아(Trend Korea)사이트를 운영중인 이베이 소싱 에이전시 케이그룹 대표이사다. 연세대 경영학 석사 졸업, 연세대 유통전문가 과정수료, 이마트 상품 소싱바이어, LG패션 신규사업팀, 이베이 코리아 전략사업팀 등에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