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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이 지났지만 혁신성장 정책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 일자리 정책이나 최저임금 인상, 불공정거래 개선 등 구체화됐던 다른 경제정책과 달리 혁신성장은 '안갯 속'이다. 창업 활성화, 인공지능(AI), 스마트공장 등이 연상되는 정도다. 정부는 과학과 기술혁신, 전 산업의 지능화, 제도 개혁, 사회혁신 등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로 '혁신선도 국가'가 되겠다고 밝혔다. 방대한 비전에 반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청와대 내 혁신성장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 전담 조직이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 '혁신수석(가칭)'을 청와대에 신설해야 하는 이유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혁신성장, 나침반이 없다

청와대는 일찌감치 혁신성장 개념 정립에 애쓰지 않았다. 지난 정권이 '창조경제'를 놓고 개념 논란에 휩싸였던 만큼, 혁신성장 개념과 정의 정립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구체화한 사업으로 성과를 창출해서 혁신성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계획이었다.

결국 혁신성장에 관한 뚜렷한 나침반이 없는 상태에서 각 부처가 나름의 항해를 시작했다. 모든 정책에 혁신이 들어갔다. 혁신 대학, 혁신 도시, 혁신 인재, 혁신 창업, 혁신 생태계 등이다. 성과를 빠른 시일 내에 내야한다는 부담감에 많은 부처가 기존 사업에 '혁신' 껍데기를 덧붙였다.

'쉬운' 정책이 우선 순위로 올라왔다. 산업별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혁신' 사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실패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성과를 강조하다보니 안정적인 사업만 추구했다.

현재 혁신성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챙긴다. 기술·산업혁신 보다 예산 논리가 우선시될 수 있다. 청와대 정책실이 명확한 방향을 설정, 제시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공정경제 등과 함께 정책 호흡을 맞춰 갈 수 있도록 청와대 내 전담조직을 둬야 한다.

◇혁신성장 이끌 전문가가 없다

청와대 정책실장 산하 조직에서 수석급은 물론이고, 비서관급에도 ICT 테크노크라트가 없다. 과학기술보좌관이 고군분투하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술을 기반으로 급변한다. 신기술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시류에 도태되고 뒤쳐진다.

블록체인 사태만 보더라도 청와대 대응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표기하기로 하면서 제도권 내 편입이 예고된다. 세계 각국이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암호화폐공개(ICO) 전면 금지 등 규제 강화로 블록체인업계를 위기로 몰았다. 청와대는 지난해 암호화폐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서둘러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기술 자문을 해줄 조직은 없었다. 과기보좌관실과 경제수석실에서 책임 공방만 일었다. 당시 나온 대응책은 시장과 기술을 별개로 보고 대응하겠다는 단편적인 대책에 그쳤다. 결국 암호화폐 기업가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았다.

카풀앱 같은 온·오프라인(O2O)연계 공유서비스도 규제 장벽에 가로막혔다. 정부 정책이 역기능 방지에만 초점을 둔 탓이다. 순기능을 주장할 수 있는 조직이 청와대 내에 없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경제수석실 업무 비대…ICT와 과학기술은 합쳐야 시너지

현재 청와대 정책실은 경제팀 직제의 업무 중복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청와대 정책실 산하 경제수석과 정책실장 산하 경제보좌관 업무 범위가 불분명하다.

경제수석실 자체가 비대하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 정책실장 직속으로 뒀던 통상비서관과 지역균형비서관을 경제수석실로 통합시켰다. 일자리수석실 산하 비서관이 3명인데 비해 경제수석실은 비서관 6명을 두고 있다. ICT산업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에서 다뤄지지만 여러 업무의 하나에 머물렀다. 전면에서 사라졌다.

이에 반해 4차 산업혁명과 과학, 국가 R&D 등을 챙기는 과학기술보좌관실은 규모가 초라하다. 선임행정관 1명을 포함해 총 4명이다. 지난 정권 미래수석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SW)산업을 전담할 인력도 청와대 내에선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SW강국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았지만, 담당 인력이 없다. 산업계와의 소통 창구가 줄었다.

경제수석실의 ICT 업무 기능과 과기보좌관실을 격상해 혁신수석실로 통합한다면 효율적인 정책 공조가 가능하다. 서비스·IT 융합 분야로 혁신성장에 집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혁신성장은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공공 분야에선 한계가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로 확대돼야 한다. 혁신창업 기업을 육성하고, 신사업 추진을 통한 기업의 질적 성작이 이뤄져야 일자리도 늘어난다.

◇혁신성장 정책, 세일즈 외교전 준비해야

혁신수석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학기술과 ICT는 문재인 정부 외교 정책에서 '꽃'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한반도 신경제구상'에서도 우리가 내세울 무기는 ICT다. 4차 산업혁명 공동 대응을 외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혁신성장 모델을 전파해야 한다. 남북경협이 활발하게 전개된다면 인프라·에너지 산업과 함께 ICT 기술 지원 및 교육이 우선순위로 요구될 전망이다. 혁신성장 정책으로 세일즈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IT 분야 수출 비중이 40%가 넘는데도 청와대 내 전담 인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홀대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혁신기술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나갈 전담 조직을 이제라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