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 미국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이 주도하는 글로벌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8일(현지시간) 트럼트 대통령은 각국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노골화할 전망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일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한 지렛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반덤핑·상계관세로 가뜩이나 미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통상 당국은 23일까지 추가 협상을 통해 관세 경감 또는 면제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한국 관세 면제 가능할까=이번 철강·알루미늄 관세 조치의 근거는 무역확장법 제232조다.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을 근거로 고강도 규제를 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 안보에 도움이 되는 동맹국은 예외가 될 수 있다. 실제 트럼트 대통령은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호주를 '안보협정 신속 추진' 명분을 내세워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에 우리나라도 전통적인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관세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관세 조치가 시행되는 23일 이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에는 난관이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미국 정부내 안보라인과 경제라인 의견이 미묘하게 다르다. 안보라인은 혈맹이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이 당연히 관세 면제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무부 등 경제라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산 철강이 미국 수입시장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물량 자체가 많고, 중국산 철강 제품이 환적 형태로 미국에 재수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통상 당국은 대미 수출 품목 중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고, 작년 중국산 철강 수입은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경제라인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실질적인 문제는 협상 상대방인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의 협상 기회 자체를 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관세 부과 결정 이후 영국, 일본, EU, 중국, 브라질 등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USTR 등 미국 측과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3일 이전까지 USTR이 각국 실무진과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된다.

관세 결정을 앞두고 두차례 미국을 방문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일단 귀국해 여러 부처와 의견 조율 등을 통해 향후 협상 전략을 재정비할 방침이다.

◇글로벌 무역전쟁, 확산 여부 촉각=중국과 유럽연합 등은 이번 미국 관세 조치에 불만과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일제히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의 독단적인 행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철강 관세조치로 피해를 보게 될 WTO 회원들을 중심으로 공동 대응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미국발 무역전쟁으로 비화될지 여부는 추가 관세 조치가 시행되는 23일 이후 결판이 날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최대한 미국 측을 설득해 추가 관세 예외 국가로 인정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조치가 NAFTA처럼 무역협상에서 미국이 우의를 가져가기 위해 내놓은 협상카드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트 대통령이 추가 관세 시행까지 “다른 나라들이 우리(미국)를 공정하게 대하는지 지켜보겠다”라고 말한 것이 그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미 FTA가 그 대상이다.

23일 이후 미국이 철강 관세조치를 그대로 시행한다면 중국·EU 등 열강들 간의 무역전쟁이 예상된다. 중국과 EU는 일찌감치 무역 보복조치까지 언급한 상황이다. 중국은 주요 미국산 곡물과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EU 역시 미국 브랜드를 중심으로 무역제재를 가할 계획이다. WTO 공동 대응은 철강 관세 피해국들간 암묵적 합의가 조성되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 역시 과세 예외 협상이 어려울 경우 EU 등과 WTO 공동대응을 염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냉전은 쉽사리 가라앉기 힘들어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의 실질적인 타겟을 중국산 철강으로 보고 있다. 예외 국가 인정을 위해서는 중국 철강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 등이 필요한 상황, 이 경우 중국과의 무역마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반도체·자동차 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자동차 품목에 대한 추가 제재에 대해서는 미국의 언급은 물론 그런 조짐도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반도체는 수급 구조가 완전히 달라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