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25곳 중 11개 기관이 기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확정했다. 전환 절차와 기준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정부 예상보다 전환 시기가 늦춰졌다. 전환 규모도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는 전환계획 수립·미수립 기관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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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일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녹색기술센터(GTC),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11개 기관이 기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GTC와 표준연은 기존 근무 비정규직에 대한 전환 심사까지 마쳤다. GTC는 전환 대상 15명 중 12명을, 표준연은 전환 대상 11명 중 10명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했다. 심사 탈락자 4명의 직무 및 정원(TO)은 경쟁 채용으로 충당한다. 두 기관은 정규직 전환에 따른 정원 조정, 인건비 비목 전환을 위한 기획재정부 협의에 들어간다.

이는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전환 대상으로 분류하고 최소한의 평가를 거쳐 이들을 정규직 전환하라고 주문했다. 연구 업무 전문성 등 합당한 사유가 있거나 잔여 TO가 생기면 외부 취업 희망자와 경쟁 채용을 실시할 수 있다.

각 출연연은 가이드라인 발표 후 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 상시·지속 업무 분류와 전환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 상시·지속 업무 분류는 전환 후보자의 규모, 전환 심사 기준은 실제 정규직 전환 규모와 직결된다.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출연연 별 전환계획은 과기정통부와 협의를 거쳐야 시행할 수 있다.

아직 전환계획 수립을 완료하지 못한 출연연 14곳 중 9개 기관은 막바지 내부 협의에 들어갔다. 과기정통부는 이들 기관이 3월 말 전환계획 수립을 완료할 수 있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5개 기관은 아직 내부 협의가 난항이다.

예상보다 정규직 전환은 늦어졌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0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그해 연말 전환계획이 수립되고 올해 3월 전환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환 완료를 예상한 시점이 됐지만 전환계획 수립 비율조차 절반을 밑돈다.

출연연 관계자는 “합당한 사유가 있으면 경쟁채용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기준을 완화해 전환 규모가 커지면 기존 정규직과의 형평성이 문제가 되고, 기준을 강화하면 전환율이 낮아 정부 정책에 역행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적정 기준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아 수 차례 전환심의위를 개최하고 있지만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전환 규모도 당초 예상을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출연연이 특정 연구 과제·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고용한 비정규직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을 해당 과제·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고용하기 어렵다는 게 출연연 입장이다. 상시·지속 업무로 분류할 수 없는 전환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전환계획 수립·미수립 출연연 명단을 비공개에 부쳤다.

전환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한 기관이 부담을 느낀다는 이유에서다. 여론이나 부처 압박에 밀려 전환계획이 급하게 수립되거나 기관 내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우려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일부 기관에서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관 명단을 공개하면 지나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면서 “기관 내 갈등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고, 출연연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별도의 정규직전환협의기구를 구성해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18개 기관이 협의기구를 구성해 직종, 인력 다양성을 고려한 전환 방식을 검토 중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