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올해 비정규직 7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KIST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가운데 '맏형'격 종합 연구기관이다. 이 때문에 KIST 상황은 과기 분야 출연연 전체 분위기를 점칠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진다. 정부의 출연연 비정규직 대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KIST의 행보가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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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관가와 과학계에 따르면 KIST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원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 초안을 제출했다.

KIST는 정규직 전환 심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규모를 167명으로 산출했다.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상시·지속 업무는 73개로 파악했다. 73개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은 앞으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뜻이다.

기존의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채용 형태를 바꾼다. 전환 우선권은 기존 근무자에 부여한다. 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인력은 최소의 심사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전환 심사 과정에서 기존 근무 인력이 기준에 미달해 전환 대상이 되지 못한 경우 그 정원(TO)은 공석이 된다. 이 TO는 167명 가운데 나머지 비정규직에게 우선 개방한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내부 경쟁을 거쳐 선발한다. 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원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우선으로 한 조치다. 이 단계에도 적격자가 없을 경우 원내 희망자, 외부 희망자까지 단계별로 범위를 넓혀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이번 KIST 비정규직 전환 계획의 핵심은 전환 규모다.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 수 있는 비정규직 인력 규모를 산출하고, 상시·지속 업무 TO를 파악했다. 기존 근무자와 전환·취업 희망자를 합해 73명의 정규직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KIST 계획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별 출연연은 자발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과기정통부와 협의해야 한다. 과기정통부와 협의가 완료되면 계획에 따라 전환 작업을 시작한다.

과기정통부는 KIST가 제출한 계획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추가 협의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전환 규모에 한해서는 양측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양측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적격 심사 기준, 전환 일정 등을 추가로 합의해야 한다. 추가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면 KIST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첫발을 떼게 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KIST 안은 전환 규모에 한정한 초안이다. 절차상 무리한 일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환 대상 개인에 대한 심사 기준, 선발 방식 등을 포함한 전환 계획은 추가 협의를 이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했다.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최소화 방침에 따라 출연연도 기간제 직원의 정규직화, 간접 고용 인력의 직고용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 기관의 특성에 맞는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 업무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현 근무자의 고용 안정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합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전환심의위의 판단에 따라 '경쟁 채용'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연말에 전환 계획을 마련하고 올해 3월까지 전환을 마칠 것을 주문했다.


출연연 현장의 전환 작업은 더딘 편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25개 기관 가운데 녹색기술센터(GTC),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표준연구원, 한국철도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5곳만 전환 계획을 제출했다. 애초에 목표로 제시한 일정은 무산됐다. 기간제 외 간접 고용 노동자의 직고용 전환 작업도 진척은 거의 없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