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허진규 일진그룹회장이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창립50주년 기념식에서 “성공적인 혁신의 길을 찾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어떤 위기 앞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날마다 전진하자”고 밝혔다. 왼쪽부터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허진규 회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집 앞마당에서 직원 2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이 반세기를 달려왔다. 그것도 한국에선 불모지에 가깝던 부품소재 사업에서 매출 3조원의 중견그룹으로 우뚝 섰다. 22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일진그룹 이야기다.

일진은 국내에서 드문 부품소재 기업 성공 신화로 꼽힌다. 50년간 한 우물을 파면서 세계 전자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을 속속 개발했다. 괄목할 만한 성장에는 창업자인 허진규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기술보국(技術報國)'을 신념으로 한 엔지니어이자 경영자다.

1968년 일진금속공업사(현 일진전기)를 창업한 그는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창업에 과감히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군 복무 시절 낙후된 한국의 공업 현실을 목도하고 전공 분야인 금속공학으로 이를 개선하는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창업 이후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소재 국산화에 앞장서 대한민국 산업사의 큰 획을 긋는 제품을 개발했다. 1975년 회사 자본금과 동일한 3000만원을 투자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동복강선은 전국 통신선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를 개발하고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특허 소송전을 벌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적 기업이 시장을 선점해 누구도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분야다.

대한민국이 IMF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던 1997년에는 14년 간 개발한 전자산업 핵심소재인 일렉포일을 국산화했다. 일렉포일은 인쇄회로기판(PCB)과 이차전지 핵심 소재로 국내 IT 산업 발전에 초석을 놓았고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이 밖에 도시건축의 새 장을 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는 일진이 국내 최초로 도입해 공급한 '커튼월' 공법이 숨어 있다. 3000억원을 투자해 국내 강관업계 숙원사업인 심리스(seamless) 강관도 개발했다.

그는 지금도 '창의'와 '도전'을 핵심 가치로 꼽는다. 허 회장과 서울대 공대 동문인 이희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이를 '벤처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이 위원장은 “허 회장은 산업화 초기인 1970년대 초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최첨단 부품 산업에 집중해 수입 대체를 이룬 진정한 '파이오니어(pioneer·개척가)'”라고 평가했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위해 매일 전진하는 정신, 성장이 둔화하고 다른 국가와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전자산업계에 가장 절실한 대목으로 보인다.

허진규 회장은 “기업이든 국가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약간 정체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며 “계속해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방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이 현대 사회”라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올해 그룹 슬로건을 '생각을 바꾸자'로 정했다. 첨단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글로벌 시장 경쟁이 심화되는 만큼 창의와 혁신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50년 전 날마다 앞을 향해 전진한다는 뜻을 담아 '일진(日進)' 이라는 이름을 지었듯이 새로운 50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후퇴한다는 '부진즉퇴' 정신으로 계속 전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