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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다. 선진국 일본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정부는 그냥 일본 정책을 '복붙'(복사해서 붙이기)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절대 일본 못 이겨. 한국의 경제 성장은 상승장이었지만 이제부터는 X하락장이다.”

어느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정부의 오락가락 가상화폐 규제 대책으로 여론이 심상찮다. 규제 반발 심리가 정부를 향하고, 일각에서는 가상화폐를 인정한 일본 찬양 글까지 거리낌 없이 올라온다.

가상화폐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에 막연한 적대심까지 표출하고 있다. 부처별 입장이 엇박자로 움직이면서 정부가 혼선을 자초하기도 했다.

◇무조건 막고 보자…금융권도 혼돈

정부가 내놓은 가상화폐 대책은 강경 규제 일색이다. 최근 법무부 장관까지 가세하며 가상화폐를 투기로 확정하고 거래소 폐쇄까지 추진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가상화폐 시총은 약 110조원 빠졌다. '김치 프리미엄'이 붙은 한국 가상화폐는 해외 시세 산정에서 배제됐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갔다. 부처별 통합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지만 오락가락한 대책 발표는 혼란만 부추겼다.

대책별 세부 가이드라인이 없고, 책임 소재만 따지는 소모전이 지속되고 있다.

은행도 혼란에 빠졌다. 정부 입장이 협의 없이 시장에 나오면서 가상계좌 발급 조치 입장도 번복됐다. 실제 금융사를 담당하는 금융 당국마저도 다른 부처의 입장과 다르다 보니 발맞추기가 어렵다.

일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으로 가상화폐를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과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투기 열풍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맞서고 있다.

이런 혼란은 현재 가상화폐 개념 정의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시점에서 가상화폐를 넓은 범위의 화폐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안이 상품으로 인정하느냐 여부다.

이를 결정하고 나면 그다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의 출렁임을 막을 수 있는 공통된 정부 입장,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일관된 정리가 필요하다. 애초에 개념 정립이 안 된 상황에서 대책을 먼저 내놓은 잘못된 선택으로 자가당착에 빠진 형국이다.

◇가상화폐 규제 철폐 '청와대 청원' 20만건 육박

오락가락한 발표로 가상화폐 시세가 출렁이자 화가 난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을 올리고 나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15일 오전 11시 현재 '가상화폐규제반대, 정부는 국민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준 적이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18만7095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한 시간 동안 1000여명이 서명에 참여하는 등 빠르게 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0만명 이상이 서명할 경우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각 부처 장관 등이 정부의 공식 입장을 내놔야 한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해당 청원은 마감일을 아직 11일 남겨 두고 있어 20만명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청원자들은 청원 이유로 “투자라는 건 개인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게 맞습니다. 무리한 투자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주식이든 그 어느 항목에도 해당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부 가상화폐를 불법 사용하는 사람과 큰돈을 투자해서 잃은 사람들 때문에 정상 투자자까지 불법 투기판에 참여한 사람들로 매도됐다”며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비판했다.

◇국회까지 가세, 가상화폐 둘러싼 이념 갈등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국회도 뾰족한 대책 없이 비판만 이어 가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 논란이 정쟁 수단으로 활용되고, 실제 계층 간 갈등 양상까지 빚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와 법무부가 멀쩡하던 가상화폐 시장을 들쑤셔서 롤러코스터 장으로 만들었다”면서 “손대는 것마다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와 진정한 마이너스의 손이 따로 없을 지경”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15일 최고위원회에서 “법무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사실상 투기·도박으로 규정, 시장에 커다란 충격과 혼란을 안겼다”면서 “아무 조율이 없었다면 성급히 정책을 발표한 법무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하고, 조율이 있었다면 청와대가 직접 책임지고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 국회 차원의 가상화폐 관련 법안은 지난해 7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거의 유일하다.

최근에서야 야당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본격 활동은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은 이달 12일에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추경호 의원을 중심으로 가상화폐대책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특위 구성을 완료하고 첫 회의를 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이달 23일 채이배·김관영 의원 주최로 가상화폐 관련 대책 토론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바른정당은 지난달 15일 당 정책위 차원에서 '비트코인 논란, 가상화폐 해법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후 추가 입법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규제 여론 높지만…폐쇄는 세대·지역별 엇갈려

정치권 논란만큼이나 가상화폐 규제를 둘러싼 세대별, 지역별 여론도 엇갈리게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등 규제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폐쇄 반대 입장이 47.7%로 폐쇄 찬성 입장(42.6%)보다 오차 범위 안에서 높게 나타났다. 폐쇄 반대 입장은 폐쇄 반대·규제 필요(35.6%) 응답과 폐쇄·규제 모두 반대(12.1%) 입장을 더한 것이다. 잘 모른다는 응답은 9.7%였다.

규제가 필요성을 인정한 답변 가운데에서는 20대와 다른 세대 간 의견이 갈렸다.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폐쇄 찬성·투기 근절' 응답이 우세했다. 50대(52.2%), 40대(45.4%), 30대(44.4%), 60대 이상(35.6%) 순으로 '폐쇄 찬성·투기 근절' 응답이 높았다. 반면에 20대(46.1%)에서는 '폐쇄 반대·규제 필요' 응답이 높았다.

이념 성향별로는 진보층(49.2%)와 중도층(45.7%)에서 '폐쇄 찬성·투기 근절'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반면에 보수층(38.3%)에서는 '폐쇄 반대·규제 필요' 응답이 높았다.


지역별로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광주·전라(53.9%)와 경기·인천(50.0%)에서 '폐쇄 찬성·투기 근절'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서울(45.5%), 대전·충청·세종(41.1%)에서도 '폐쇄 찬성·투기 근절' 응답이 우세했다. 반면에 대구·경북(47.2%)과 부산·경남·울산(44.1%)에서는 '폐쇄 반대·규제 필요' 응답이 높았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