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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분야의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스마트헬스는 표준 기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저렴하고 안전하게 개별화된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 분야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개인 건강관리용 기기, 빅데이터 및 블록체인, 인공지능(AI)과 로봇, 바이오 메트릭 등은 스마트헬스를 촉진시킬 주요 기술이다. 개인 건강관리용 제품의 경우 의료인 없이 가정에서 직접 유전자 검사를 하거나 임부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태아 초음파 영상을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의료 관련 빅데이터를 병원 외부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는 기반 제도도 마련됐다.

일부 국내 대학병원이 제공하고 있는 AI 왓슨은 해외 클라우드에 서버를 둔 원격 처방용 기기로, 사실상 기계와의 협진이다. 이미 로봇 약사가 조제 업무를 대체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헬스는 생생하게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노인 간병에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의회는 로봇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환자가 거부할 수 있다는 로봇시민법을 선언했다. 금융 이용이나 출입국 시 신원 확인에 사용되고 있는 홍채, 얼굴, 지문, 혈관 등은 앞으로 해외에서 원격 의료를 받을 때 환자 신원 확인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스마트헬스 발전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혁신 기술에 단순한 기술 접근보다 윤리, 법, 제도, 표준 고려가 필수다. 4차 산업혁명의 특성은 초연결성과 융합 제품·서비스 폭증이다.

이러한 신기술과 신개념 서비스는 기존 제도와 문화의 테두리에서 벗어난다. 얼마 전에 발표된 인간-돼지 잡종 배아 성공과 로봇 간병인 출현 등은 그동안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잡종 배아로 생성된 장기를 그야말로 치료용 재료로만 볼 것인가?

유럽에서 '전자 인간'이라는 법 지위를 확보한 로봇과 결혼하려는 자연인이 생긴다면 이를 결혼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가상현실(VR)에서 발생한 범죄 행위에 현실 세계의 법 기준 적용은 가능한가? 분명히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신제품과 신산업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우리 사회는 기존의 기준과 질서가 수용할 수 없는 영역의 폭증을 당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기술 윤리 설계와 적용 관련 각종 선언(미국 전기전자학회의 윤리 설계 지침, AI학회의 아실로마 AI 원칙, 영국표준협회의 로봇 윤리 설계를 위한 표준 등)이 전문가의 신기술 우려를 잘 보여 준다.

기존 규제와 가치관으로는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턱밑에까지 와 있다. 앞으로 윤리와 제도의 간극은 더 커질 것이다. 이에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변혁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인간 중심의 기술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한 토론과 논의의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충분히 예견되는 변혁 앞에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지진해일(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쳐 올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 차원의 체계화된 전문 대응 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신기술 홍수 속에서 인류 본연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켜 나갈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는가? 기존 질서와 제도를 새롭게 조명하고 개선할 보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그 시스템에 이러한 신기술을 가장 빠르게 흡수할 미래 세대가 참여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시점이다.

안선주 산업통상자원부 스마트헬스 국가표준코디네이터 april014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