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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책임 면탈, 조세 회피, 불공정 거래에 심지어 한국 유통업계에 대한 갑질까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한국 내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 같은 업종 내 한국 기업의 역차별 호소가 커지고 있지만 마땅한 법이나 제도가 마련되기까지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현황 파악이다. 사태 본질을 파악해야만 그에 맞는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 전자신문은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인식과 현안 파악'을 위해 최근 9일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일반 기업체 소속이 아닌 20여개 학회, 대학, 연구소, 법무·회계법인 교수와 연구원 등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한국통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경영정보학회, 한국중소기업학회, 한국자동차공학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국민대, 대구대, 수원대, KAIST, 한양대, 경인교대, 한국폴리텍대학, 강남대, DGIST, 법무법인 태평양, 삼일회계법인, 삼정계획법인, 한국회계기준원 등 전문가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이들은 글로벌 ICT 기업이 국내 산업 발전에는 기여하지만 문제점은 분명하다는 데 공감했다.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과 국제 사회 공조 등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설문 참여자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비롯해 과학기술, 경영, 회계, 법무 분야 전문가다. 이들은 글로벌 ICT 기업의 그동안의 역할에 대해선 어느 정도 긍정 평가를 내렸다.

응답자의 셋 중 둘인 66.3%가 '그렇다'고 답했다. 50년 전 IBM이 한국법인을 설립한 이래 수십년 동안 국내 정보화와 ICT 산업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 것이다. 글로벌 ICT 기업은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등 컴퓨팅 분야를 시작으로 통신, 반도체, 인터넷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며 국내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응답자 19.4%는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다'라는 응답은 10.2%로 나타났다.

2.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 관련해 가장 심각하거나 중요한 논란 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응답 수 100개)

'투자·고용 등 사회 책임 회피'(30.0%)를 가장 많이 꼽았다.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큼 한국 사회에 기여는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여실하게 드러난 것이다.

국내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고 국내 중소기업과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상생을 실천하는 기업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내에서 얼마만큼 수익을 올리는지, 고용에 기여하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같은 불투명성이 사회 책임 논란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응답자 28.0%는 '국내 규제'에도 문제가 있다고 답해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국내 규제 개선이 필요함을 나타났다. '조세 회피'(20%)와 '불공정 행위와 갑질'(13%)이 뒤를 이었다.

3. 글로벌 기업이 국내 기업 활동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응답자 73.7%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라는 대답은 12.1%에 그쳤다.

글로벌 ICT 기업 특혜는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과 맥을 함께한다. 국내 기업은 우리나라 법의 영향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글로벌 ICT 기업이 특혜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세금 공방, 통신사와 글로벌 인터넷 기업의 망 사용료 논란은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글로벌 ICT 기업 특혜는 내수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 각 분야 전문가 역시 국내 기업과 인식이 같다는 점이 확인됐다.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4. 국내(한국) 기업이 세금과 법·규제 등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ICT 기업 대비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65.3%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라는 응답은 16.3%에 그쳤다.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네이버와 구글이 정면 충돌하며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비즈니스 규제, 세금 회피, 망 사용료 등에서 국내 기업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글로벌 ICT 업계는 국내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공방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5. 국내(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의 매출, 수익률, 조직 구조 등 정보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글로벌 ICT 기업은 외무감사나 재무제표 공개를 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를 설립한다. 그들에게 국내 법인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창구일 뿐 상장을 통해 가치를 키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회사 운영이 폐쇄되고 불투명한 게 특징이다.

이에 대한 인식은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응답자 81.6%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전문가가 이들 기업의 불투명성을 지적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시행안 개정안에 관심이 모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6. 글로벌 기업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요구 또는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응답 수 98개)

전문가 50%가 '1~2번 경험한 적이 있다', 7.1%는 '자주 경험했다'고 답해 응답자 과반이 이 같은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ICT 기업 제품 사용 시 불합리한 요구나 대우는 주로 휴대폰 같은 개인 소비품 구매와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기 싫으면 말라'는 식의 서비스 정책, 정확한 고지 없는 정책 변경,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를 명분으로 국내 환경과는 동떨어진 서비스 등이 이용자 불만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기업용 ICT 제품 공급과 유지보수 때도 절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와 갑질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7. 글로벌 기업도 국내 기업만큼 투자, 일자리 창출 등에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전문가들은 글로벌 ICT 기업도 국내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66.3%가 '국내 기업과 동일한 수준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글로벌 ICT 기업이 우리 기업과 한 생태계 안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사회 기여도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글로벌 ICT 기업이 국내 기업보다 한국 사회 기여도가 부족하다는 인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이 더 기여하는 게 옳다는 응답은 19.4%에 그쳤다.

8. 일부 글로벌 기업은 국내 매출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절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글로벌 ICT 기업의 세금 적절성 질문에는 전문가 대부분이 문제가 많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절대 수치라 할 수 있는 85.7%의 전문가가 '더 내야 한다'고 답했다.

글로벌 ICT 기업이 외부 감사를 받지 않고 회계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수익 대비 세금 납부가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글로벌 ICT 기업의 세금 절세나 조세 회피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문제이며,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의 핵심이다.

9. 글로벌 기업이 국내외 서비스나 마케팅 등에 활용한 개인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정기 실사 및 점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글로벌 ICT 기업은 국내법에 따라 개인 정보 활용 내역을 공개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들을 실사할 방법이 없어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들이 활용한 우리 개인 정보를 정기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 91.8%가 그래야 한다고 답했다. 글로벌 ICT 기업에 의한 개인 정보 활용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이용자 우려를 해소하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0. 글로벌 기업과 관련해 최근 불거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응답 수 98개)

전문가들은 글로벌 ICT 기업으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지금의 제도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 응답자 36.7%가 '우리 정부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금보다 현실에 맞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제 사회의 공감대 형성과 공조'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같은 36.7%로 나타났다. 글로벌 ICT 기업에 국내 규제를 들이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글로벌 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법성 조사 등 강력한 조사와 제재'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26.5%에 달했다. 구글이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매출을 공개하는 것은 정부의 강경한 입장과 지속 노력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특별취재팀=안호천차장(팀장), 유선일·최호·권동준·정용철·오대석·최재필·이영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