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중 문익점 선생과 목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문익점 선생이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목화씨를 붓대 속에 숨겨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무명천을 처음으로 짜기 시작했다고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 외국의 씨앗(유전자원)을 몰래 들여와 국내에서 이용했다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는 이러한 행위는 생물해적으로 고발당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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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올해 8월 '나고야의정서'가 국내에서도 발효됐다. 이 의정서는 타국의 유전자원을 수입하려면 해당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 자원을 활용하여 얻은 이익을 해당 국가에 일정부분 나누어줘야 한다는 국제조약이다. 고려 때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오려면 원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무명천으로 옷을 해 입었다면 원나라에 로얄티를 줘야한다는 말이다. 나고야의정서 체제에서는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산업부문의 추가 부담 증가는 당연한 수순이다. 유전자원 수입국은 부담이 증가하는 반면에, 유전자원 수출국은 그만큼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유전자원은 의약품, 식품, 화장품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바이오산업의 원료로 사용되는 생물자원이다. 항노화, 미백 등에 효능이 있어 화장품에 쓰이는 식물이 대표적인 유전자원의 예다. 의약품이나 기능성식품 개발에 필요한 미생물, 동물, 유전자도 범주에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원료로 이용되는 유전자원의 67% 가량을 수입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제조에 사용되는 유전자원 중 외국산이 78%에 이른다. 이러다보니 유전자원 수입으로 추가 발생하는 로열티가 1조5천억원에 달하며, 집계에서 누락된 수치를 합하면 수조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이는 유전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 막대한 경제적 추가 피해가 발생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의정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올해 초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에서 국내 산학연 연구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의정서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한바 있다. 전체 응답자 중 '알고 있다'는 비율은 28%에 그치고, 이중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이의 비율은 4%에 불과했다. 대부분(72%)은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해 조사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6년 결과를 보면, 알고 있는 비율은 17%(잘 알고 있음 0%)로 잘 모른다는 응답이 82%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8월 우리나라도 의정서를 비준 한바 있다.

나고야의정서를 비준하기 위해 정부는 새로운 법률까지 만들었으나, 각 부처별로 시행되는 기존 법률과의 상충되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의정서 체제하에 들어온 이상 관련 국가점검기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점검기관이란 해외자원을 수입한 국내 연구자가 외국과 맺은 계약서에 따라 해당 생물자원을 합당하게 이용하는지 여부를 감시·조사하는 곳이다. 만약 해당 생물에 대해 자원 수출국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그 자원의 이용 실태를 조사해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조사에 필요한 인력 확보 및 전문성, 시간 등 기회비용 문제가 있다. 더불어 조사 대상자인 산학연 연구자의 연구 아이디어 및 기업비밀 누출도 우려된다. 철저한 준비 없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제라도 예상되는 문제해결과 국내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현명한 지혜모아야 한다.

이덕일 씨가 쓴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에 따르면 문익점 선생 이야기의 사실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당시 목화는 원나라의 반출금지 품목이 아니었다. 장애물은 들여온 목화의 재배법을 알지 못한 점이었다. 문익점 선생은 시험재배로 나무 한 그루를 겨우 살려냈고, 이후 장인과 함께 3년간의 노력 끝에 목화를 전국에 보급했다. 문익점 선생의 공로는 유용한 외래종자의 도입과 그 식물자원의 재배기술을 개발, 백성에 전파한 것이다. 우리도 이를 본받아 실용적 과학자의 탐구정신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yhchang@kribb.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