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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 중 가장 기이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이보다 이상한 느낌을 주는 영화 제목은 들어본 적 없다. 내장을 먹고 싶다니 얼마나 이상한 내용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목 보고 놀란 가슴은 영화를 보고 한 번 더 놀란다. 엽기 호러와는 전혀 무관한 고등학생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서다.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일본 영화는 학교 도서관을 관리하는 남고생과 여고생의 짧은 만남을 다룬다.

슬픈 사랑 이야기답게 여고생은 불치병에 걸렸다. 아픈 곳은 다름 아닌 췌장. '이자'라고도 부르는 이 장기는 크기도 작고 이름도 낯설어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간이나 위, 십이지장, 대장, 쓸개 등과 비교하면 들어본 경험이 드물다. 충수나 회장보다는 유명할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원작자가 '췌장'을 고른 데에는 확실히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

남고생은 우연히 주운 여고생의 일기장을 보고 췌장이 아프다는 것을 안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도. 두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중 여고생은 일본 민간요법을 언급하며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호러 느낌은 아니다.

일본에는 몸이 아플 때 동물의 동일한 부위를 먹으면 낫는다는 민간요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분히 원시 주술을 떠올리게 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옛날에는 이런 주술적 사고가 꽤 널리 퍼졌던 것 같다. 우리 조상은 고양이에 물리면 고양이털을 태워 재를 상처에 바르고, 미친개에게 물리면 개털을 태우고 참기름에 섞어 환부에 발랐다고 한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주술적 사고가 익숙하지 않다.

'췌장을 먹고 싶다'는 말은 처음에는 장난에 불과했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는 관객을 울리는 애틋한 의미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내장 중에서도 구석에 숨어 유명하지도 않은 단어를 엽기적 느낌을 주는 문장으로 만든 뒤 민간요법 느낌을 쫙 빼고 애틋한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실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굳이 과학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민간요법 상당수는 '유사과학'일 뿐이다. 검증 과정을 거쳐 의학의 영역으로 흡수된 것도 있지만 다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양이에게 물렸다고 털을 태우는 것은 물론이고 더군다나 배가 아프다고 췌장을 먹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