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이상한 관성이 있다. 미국이 하면 좋은 것, 바른 것, 따라야 할 것으로 여긴다. 한국전쟁 뒤 60년 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관점이다. 미국 우월주의다. 경제도 그렇고 학문도 그렇고, 심지어 정부조차 그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뒤 '미국 제일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가 가속되면서 한국산 태양광 패널과 철강 제품에 이어 한국 세탁기까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장 내년부터 한국이나 미국 내에서 생산된 세탁기가 아니라면 삼성·LG 합쳐 대략 50만대 이상 분부터는 제품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 삼성·LG가 미국 소비자 권익과 현지 공장 건립 등 일자리 위축을 근거로 반대 주장을 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미국은 한국을 안보상 필요에 따라 존중하는지 몰라도 통상·교역 등 경제 분야는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찬거리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한국 정부의 역할과 관점을 재정립할 필요가 나온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이 한국 법질서를 교란하고 심지어 유통 시장, 소비자 권익을 농락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미국 기업으로만 대접했다. 어떤 제재도 가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따라 주기를 간곡히 요청할 뿐이었다. 한국 기업은 미국 정부의 집요한 요구에 주머니 털리고 자존심까지 털리는 형국인데도 미국 기업은 한국 정부가 쳐 준 울타리 안에서 법을 비웃으며 우대 받고 사업을 키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기치로 내건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슬로건과도 정면 배치된다.

정부가 지금까지 외국 기업, 특히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기업에 취해 온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바로잡아야 할 시기가 왔다. 이만큼 잘해 주고 뺨 맞았으면 충분하다. 이제 우리도 주권국으로서의 자존심으로 해외 기업의 불공정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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