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구조조정 전략 일환으로 '탈 가속기'를 검토한다. 중이온·양성자·이온빔·방사광 등 크고 작은 각종 가속기 시설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설 구축사업을 줄여 마련한 재원으로 운영 효율화와 전문인력 양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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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13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신규 가속기 시설 투자 중단을 검토한다. 당분간 신규 시설을 구축하지 않고, 현재 건설 중인 가속기에도 추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는 게 골자다. 이 같은 방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 '어떡할래 TF' 차원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가속기는 입자를 가속시켜 원자핵, 분자 구조 등을 관찰하는 대형 기초 연구 시설이다. 물리학계는 물론 첨단 의료, 소재 분야에서 수요가 높다. 넓은 부지와 대규모 투자를 수반한다. 세계에 단 3기 밖에 없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에는 6000억원 가까운 사업비가 들었다.

정부는 R&D 구조조정을 천명한 상태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거대·공공 R&D와 대형 시설 투자가 정리 1순위로 거론됐다. 절감한 예산을 4차 산업혁명 대응, 국민생활 문제 해결, 기초·원천 R&D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건설비와 운영비가 많이 드는 가속기 구축 사업이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에 가속기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고 불필요한 지출이 있다는 지적도 있어, 전반적인 정리와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앞으로 신규 가속기 건설 사업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부 가속기 사업단에 이 같은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속기처럼 장기간에 걸쳐 구축이 이뤄지는 시설은 사업 기간 중 예산이 늘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으로 이런 경우에도 예산 증액은 최소화하거나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설계·사양을 변경해서라도 당초 투자 계획 준수를 유도한다.

한 가속기 사업단 관계자는 “이미 시작한 구축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더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면서 “증액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성능이 있다면, 차라리 기존 예산으로 달성할 수 있는 성능으로 맞추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계 일각에서도 더 이상의 가속기 건설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속기가 웬만큼 구비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질자원연구원 등이 비교적 소규모 이온빔가속기를 운용한다. 경주에는 양성자가속기가 들어섰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중이온가속기, 원자력의학원의 중입자가속기도 구축 중이다.

가속기 시설 투자보다는 효율적인 관리와 유지·보수,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과학계 관계자는 “가속기 분야의 시설 투자는 이제 필요한 구색은 모두 갖췄고, 이제는 우수 인력을 유치해야 하는데 3D 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관행적인 하드웨어(HW) 투자보다 소프트웨어(SW)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