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초 대형 상용차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 의무 장착 보조금 지급을 확정했지만 아직까지 세부 성능 검증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 국민 안전보다 ADAS 의무 장착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전시 행정'이란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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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발생한 전세버스 추돌사고 블랙박스 화면

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말 국내 ADAS 사업자를 대상으로 '첨단안전장치(차로이탈경고장치) 장착 지원 사업' 설명회를 개최하고 ADAS 의무화 사업 및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 7월 18일 여객운송사업자가 운행하는 길이 11m를 초과한 승합차량과 화물운송사업자가 운행하는 총중량 20톤을 초과한 화물·특수자동차는 전방추돌방지장치(FCWS)와 차로이탈경보장치(LDWS) 장착을 의무화했다. 당초 LDWS 의무화만 추진했지만 실효성 논란이 일면서 FCWS 기능이 포함된 제품으로 성능 기준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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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추돌경보시스템(FCWS) 이미지 (제공=기아자동차)

국토부는 올 12월 교통안전법 시행 규칙을 개정하고 ADAS 장착 의무화 대상을 9m 이상 승합차량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ADAS 의무화 대상 차량은 약 15만대에 이른다. 정부는 2019년 말까지 계도 기간을 두고 2020년부터 미장착 차량에는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ADAS 의무 장착 활성화를 위해 하위 법령 개정을 연말까지 완료하고 2018~2019년 2년 동안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평균 장착 비용을 50만원으로 계산해 국가 예산 20만원과 지방자치단체 예산 20만원을 지원하고, 차량 소유주가 10만원만 부담한다. 내년도 보조금 예산안은 150억원(약 3만2500대) 규모로 3~4월께 지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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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이탈경보시스템(LDWS) 이미지 (제공=기아자동차)

국토부는 이번 사업에서 '국민 안전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보조금 지급 대상 ADAS 제품 성능 기준을 강화한다. 지난해 교통안전공단과 도로공사가 주관한 ADAS 장착 연구 사업과 화물복지재단이 주관한 시범 사업에서 선정된 ADAS 제품 성능이 떨어져 사고 예방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2일 천안논산 고속도로에서 13명이 사상한 '8중 추돌사고'도 시범 사업용 ADAS를 장착한 관광버스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앞서 연구 사업과 시범 사업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보조금 사업 시행 때는 기술과 가격을 모두 고려해 사업자를 선정, 국민 안전 강화에 큰 도움이 되도록 진행할 것”이라면서 “안전성을 최고 기준으로 정해 보조금 대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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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아반떼에 설치된 모빌아이 ADAS 제품 (출처=모빌아이)

전문가들은 ADAS 보조금 지급 사업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 내년 초 ADAS 보조금 지급 대상 선정 시험을 치를 계획이지만 성능 기준도 마련하지 못했다. 시험 주관 부처도 자동차안전연구원 교통안전공단(KATRI)으로 할지 자동차부품연구원(KATECH)이 맡을지 정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국내 ADAS 사업자들은 어떤 기준에 맞춰서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교통 안전 전문가는 “사업 취지가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다소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ADAS 성능 기준에 대해 정밀하게 준비하고 테스트도 정확해야 한다”면서 “성능 기준 마련과 성능 테스트 진행에다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모든 과정을 내년 초에 몰아서 하다 보면 사업 효과를 거두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