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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과소비' 논란이 뜨겁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고가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이동통신사와 제조사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00만원짜리 휴대폰을 구매한 이용자 선택엔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 볼 주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휴대폰은 중저가 제품이 훨씬 많다. 고가 휴대폰을 써야 체면이 선다는 '과시 소비' 성향은 없는지 따져봐야 할 필요도 있다.

◇고가 제품만 팔리는 한국 시장

우리나라에서 비싼 휴대폰이 많이 팔리는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통계가 뒷받침한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평균 휴대폰 도매 가격은 464달러(약 52만원)로 세계 2위다. 한국인 한 사람이 구매하는 휴대폰 평균 가격이 52만원이라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애플 아이폰에 시장을 잠식 당한 일본을 제외하면 평균 휴대폰 가격이 한국보다 비싼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신용현 의원(국민의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휴대폰 할부 판매 평균 가격은 약 61만원이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이통 3사의 휴대폰 할부 판매 가격을 재구성한 것으로, 지금까지 일반에 알려진 통계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

고가 휴대폰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애틀러스리서치가 지난해 월평균 스마트폰 가격대별 판매 동향을 조사해 보니 80만원을 초과하는 고가 제품 점유율이 52.9%에 이르렀다. 국민 절반이 2년마다 한 번 100만원에 가까운 전자제품을 새로 사는 셈이다. 가계통신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신 의원은 “고가 단말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가계통신비 부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와 업계가 노력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저가폰이 없다?…엉뚱한 진단

국정감사에서는 휴대폰 과소비 원인을 이통사와 제조사에서 찾았다. 이통사가 할인을 미끼로 고가폰과 고가요금제 가입을 유도했고, 제조사는 비싼 휴대폰을 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모순된 내용이 많다.

중저가 휴대폰을 구하기 어렵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SK텔레콤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 40종 가운데 중저가로 분류되는 20만~70만원대 제품은 25종에 달했다. 전체의 62.5%다. 시중에서 팔리는 휴대폰 석 대 가운데 두 대는 중저가폰인 셈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소니 외에 이통사가 주문 제작한 제품까지 다양하다.

더욱이 중저가폰은 대체로 지원금을 많이 준다. 출고가가 저렴한데 지원금까지 많으니 실제 소비자가 내는 돈은 고가폰에 비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고가폰을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 요인이 아닌 다른 원인이 숨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안 사는 것이지 못 사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이통사가 고가폰과 고가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것은 오랜 악습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할 문제가 있다.

고가요금제 가입만 유도하고 소비자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문제지만 이통사는 많은 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을 지급한다. 판매장려금 일부는 '페이백' 형태로 소비자에게 가기도 한다. 이 덕분에 소비자는 최신 프리미엄 휴대폰을 부담이 덜한 가격에 구입한다.

이통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정부는 휴대폰을 포함한 '통신 과소비' 문제를 인식하고 2014년 단통법을 도입했지만 3년 내내 '이통사만 배불리는 악법'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통신 과소비를 줄이는 해법을 찾자고 나서는 건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휴대폰은 '과시 소비' 아이템

한국에서 휴대폰 과소비가 일어나는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찾아볼 필요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앞선 이통 인프라다. 전국 어디서든 세계 최고 수준의 이통 인프라를 누리게 되면서 자연스레 고가 단말 수요도 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스마트폰 보급률 88%라는 압도하는 비율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휴대폰이 '과시 소비' 도구가 된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도 요구된다. 사회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경제력과 무관하게 비싼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회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6월 유통경영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 지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성인 남녀 3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빠른 접속성이나 문제 해결성, 오락성보다도 사회 지위가 더 큰 고객 만족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논문은 “멋져 보이는 것과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지 않는 것, 지위가 있어 보이는 것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만족을 얻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휴대폰을 바꾼다는 사실도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뒷받침한다. 2013년 한국 휴대폰 교체 주기는 15.6개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였다.

오중균 전국집단상가연합회장은 “매장에 올 때부터 고가폰을 사려고 마음먹고 오는 손님이 10명 가운데 8명”이라면서 “싼 휴대폰 사용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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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에 위치한 SK텔레콤 강남 직영점 앞에서 아이폰7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모습.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