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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인류는 직경 58㎝, 무게 83.6㎏의 작은 물체를 지구 밖으로 보냈다. '우주 시대'의 서막을 연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다. 구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넉 달 만에 자국 인공위성을 쐈다.

우주 개발 경쟁이 불 붙었다. 양국 간 레이스는 유인 우주선 발사와 달 착륙으로 이어졌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인공위성은 이제 통신, 기상 관측, 과학 연구 등 전방위로 활용된다. 인류의 눈과 귀는 지구 경계를 넘어섰다.

스푸트니크 1호는 지금의 기준으로는 초보 수준이었다. 4개의 긴 안테나와 라디오 전송기를 탑재했다. 31.5㎒ 주파수로 '삐-삐' 하는 무선 신호를 보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안정적으로 돌면서 신호를 전송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고도 215~900㎞의 저궤도에서 24시간 동안 지구 둘레를 16번이나 돌았다. 초속 8㎞, 1시간 36분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속도다. 발사 석 달 후인 1958년 1월 4일, 지구 대기권에 진입해 불타 사라지며 회전을 마쳤다.

인공위성 발사는 우주 탐사는 물론 우주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흥분과 긴장이 채 가시지 않은 12월,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 발사마저 성공시킨다. 스푸트니크 2호에는 '라이카'라는 개도 탑승했다. 지구 궤도에 오른 최초의 생명체였다. 무게도 508㎏으로 늘었다.

소련과 냉전을 벌이던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소련보다 넉 달 늦은 1958년 1월 31일,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다. 하지만 발사체(주피터-C 로켓)의 성능, 인공위성 무게(13㎏) 면에서 스푸트니크보다는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스푸트니크 1호를 기폭제로 두 나라는 이후에도 엎치락뒤치락 하는 우주 개발 경쟁을 펼치게 된다. 소련은 1960년 스푸트니크 5호에 생명체를 태워 보냈다가 귀환시키는 데 먼저 성공한다. 미국은 1960년 아폴로 11호 발사로 달 착륙에서 소련을 앞질렀다.

인공위성은 60년이 지난 오늘 매우 친숙한 존재가 됐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위성항법장치(GPS)는 인공위성 덕분에 가능했다. 위성이 보내는 반송파를 지상의 수신기로 받아 위치 정보를 얻는 원리다. 지구 반대편에서 방송을 수신하거나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데도 사용된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 자기장, 태양 활동 등을 관측하는 과학 용도로도 활용한다.

인공위성 용도는 궤도에 따라 결정된다. 인공위성은 발사 조건과 방향, 각도에 따라 다양한 궤도로 지구를 돈다. 지구 자전 속도에 맞춰 지구와 같은 방향으로 도는 위성을 '정지궤도' 위성이라고 부른다. 지구에서 볼 때 항상 같은 위치에 위성이 떠 있기 때문이다. 정지궤도 위성은 통신, 기상 관측 용도로 많이 쓰인다.

지구 자전축과 일자로, 남극과 북극을 가로지르며 도는 '극궤도' 위성도 있다. 기상 분야와 내비게이션 용도로 많이 쓰인다.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저지구궤도 위성은 정찰과 이동통신용으로, 고타원궤도 위성은 고위도 지역의 통신용으로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는 우주 개발 분야에서 후발 주자지만 인공위성 기술만큼은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1992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발한 소형실험위성 '우리별위성 1호'를 발사했다. 1999년 발사한 우리별 3호는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 1995년엔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방송위성 '무궁화 위성 1호' 발사에 성공했다.

현재 정부는 차세대 소형위성 2호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2020년 하반기 발사를 목표로 29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시스템은 물론 본체와 탑재체 설계, 조립, 시험, 검증 전 과정을 우리 기술로 수행한다.


이 위성에는 우리나라 우주기술 로드맵 200대 중점 기술 중 하나인 'X-밴드 영상레이다'를 탑재해 검증한다. 주·야간, 악천후에도 지구를 관측할 수 있는 선진 기술이다. 이스라엘이 먼저 개발해 지구 관측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민간과 연구계 수요를 반영해 독자 모델을 개발, 활용할 계획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