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점정(畵龍點睛)!

중국 남북조시대 화가 장승요는 절 벽면에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늘로 솟을 듯한 용 모습은 완연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눈만은 그리지 않았다. 눈마저 그려 달라는 재촉에 시달린 끝에 마지못해 그렸으나 눈을 그리자마자 용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하는 것을 '화룡점정', 그리고 무언가 부족할 때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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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중국 진시황과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하를 통일한 제왕, 잔인하고 냉혹한 폭군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는 것이다.

진시황 때 만리장성, 아방궁 등 막대한 토목 공사로 백성은 토탄에 빠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덕택에 오늘날 중국은 세계 명소와 막대한 수입을 누린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쪼개졌을 수도 있으니 지금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꼽힌다. 한비자 한 사람을 얻기 위해 한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쓴소리 잘하는 왕전을 좌천시켰다가 뒤늦게나마 재기용하는 등 우수한 인재 등용뿐만 아니라 통 큰 논공행상으로 천하를 통일했다.

봉건제를 이상형의 제도로 여기는 유학자들이 반발하자 '분서갱유'를 단행했다고는 하지만 이후까지 존재한 경전이 많고, 유학이 중국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이 됐다는 점에서 이 또한 후대에 와서 과장됐을 수 있다.

이런 진시황도 후계자 양성 측면에선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 태자 부소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영원한 제국을 꿈꿨지만 실패했다.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는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 부소를 죽이고 만만하던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에게 임진왜란이라는 크나큰 상처를 입혔지만 자신의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와는 전혀 다른 외교력으로 천하를 재패했다. '삼단철포' 부대 등 무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천황의 전통 권위를 활용하기 위해 조정에 접근하는 등 명분을 앞세웠다. 다이묘가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천황 명으로 포장해 토벌했으며, 관백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고노에 사키히사의 양자가 되는 수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간토로 이주시킴으로써 통일 대업을 완수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후계자 양성에서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 적자 쓰루마쓰가 요절하자 조카 히데쓰구에게 관백을 물려주고 오로지 전쟁에만 몰두하는 듯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히데요리를 낳게 되자 돌변, 충실한 부하 히데쓰구를 모반죄로 몰아 죽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어린 히데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적수가 될 수 없었고, 적자 승계의 꿈은커녕 도요토미 정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진시황과 도요토미가 주는 역사 교훈은 자신이 성공하는 것은 리더십 필요조건일 뿐 후계자 양성까지 성공해야 충분조건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즉 리더십의 화룡정점은 후계자 양성이다.

그동안 필자는 '문사철, CIO 역량 강화 필수품' 'CIO들이여! 조직의 용어를 사용하라' 'CIO에게 고전을 권하는 까닭' '아름다운 휴먼네트워크 CIO클럽' 등과 같은 기고문을 통해 우리나라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의 역량 강화 필요성과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다.

CIO 역시 자신만의 역량 강화는 리더십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아무리 성공한 CIO라 해도 훌륭한 조직 내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하면 그 업적은 자신의 시대로만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화룡에 점정은 빠졌다'는 평가를 듣지 않았으면 한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대학원장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