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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바이러스(HIV) 검사(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서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이즈) 바이러스(HIV)를 고의로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킨 행위에 대해 중범죄가 아닌 경범죄로 처벌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언론매체에 따르면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6일 의도적으로 HIV를 전염시키는 행위에 대해 기존 '중범죄'에서 '가벼운 범죄'로 처벌 수위를 낮추는 'SB239 법안'에 최종 서명했다.

이에 따라 자신이 HIV 감염자임을 알고도 다른 사람을 감염시켰을 때 기존 징역 8년형까지 선고됐으나 내년 1월 1일부터는 최대 6개월 이하의 형을 받게 된다.

미국 언론들은 의학의 발달로 에이즈가 불치병이 아니라 치료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되고, 동시에 최근 미국 내 에이즈 신규 감염률이 대폭 하락한 점 등을 반영한 법 개정이라고 설명했다. 에이즈도 성병이나 결핵, 에볼라, 사스 등 잠재적 위험성이 있는 여타의 감염질환으로 보게 됐다는 것이다.

에이즈 감염자가 정기적으로 약을 먹으면 체내 HIV 수는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줄어들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낮고, 예방약의 효과도 좋다는 연구 결과도 반영됐다.

이 법안을 지지한 캘리포니아주 의학협회, 변호사협회, 인권단체, 동성애자단체 등은 개정 법이 “HIV에 대한 낙인찍기를 없애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감염 여부를 검사받고 예방조치를 취하도록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법안 발의자인 스콧 비너 캘리포니아주의회 상원의원과 토드 글로리아 하원의원은 “HIV 감염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고 에이즈를 범죄가 아닌 공중보건 이슈로 취급하는 일에 중요한 발걸음을 떼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공화당 소속 주의원 상당수와 일부 종교단체 등은 “처벌 완화는 HIV 양성 반응자의 책임의식을 해이하게 만들어 다시 에이즈 감염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감염자 중에는 정기적으로 약을 챙겨 먹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라면서 “기존 법률은 고의적으로 전염시킨 사람만 중범죄로 처벌토록 한 것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백악관의 에이즈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고의적 감염을 중범죄로 처벌하는 조항이 과학적 증거에 배치되고, 감염자의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감염 예방 효과도 없고 오히려 감염 여부 검사나 치료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인용돼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법학대학원 연구 결과, 지난 1988~2014년까지 캘리포니아주에서 이 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379명 중 2% 미만인 7명만이 고의적으로 전염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자신이 감염자임을 모르거나 의도 없이 감염시킨 경우였다.


또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대부분은 여성 성노동자였고, 그중에서도 흑인과 라틴계 등 소수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