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과학기술의 새 청사진이 옛 거버넌스 체계에서 마련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과학기술 플래닝타워' 일원화가 지지부진하다. 국회의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과 심의 체계 간 불일치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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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 개정도 미뤄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과학기술자문회의법 전부개정안은 현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플래닝타워'를 완성하는 핵심 법안이다. 정부는 유사·중복 기능이 많은 국가과학기술심의회와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통합키로 했다.

개정안은 이에 맞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심의, 의결 기능을 부여했다. 현재 자문회의 기능은 '자문'에 한정돼,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안은 자문회의 산하 심의위원회 설치도 주문했다. 자문·심의·운영·특별위원회가 새로 생긴다. 기능이 확장된 만큼 자문회의 내 사무기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자문회의법 개정안은 여야 간 이견이 적어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다. 애초 지난 달 28일 처리가 유력했다. 과방위는 21일 법안을 상정하고 2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처리할 계획이었다. 과기법 개정안에 포함된 과기혁신본부 예산권 조항이 문제가 됐다.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간 이견이 있고, 기획재정위의 관련 법안(국가재정법 개정안) 처리가 불투명한 만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에서 나왔다. 결국 소위 자체가 무산되면서 과기법은 물론 자문회의법 개정도 함께 미뤄졌다.

자문회의로의 심의·의결 일원화는 문 정부 과학기술 거버넌스 구상의 중요 축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기획, 예산, 평가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라면, 통합 자문회의는 주요 정책의 심의·의결·자문을 수행하는 '플래닝타워'다. 이 구상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도 제시됐다.

이 중 과기혁신본부는 본부장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공식 출범했다. 예산권 확보라는 큰 숙제가 남았지만 첫 발은 뗐다.

통합 자문회의 출범은 갈 길이 멀다. 부의장(염한웅 포스텍 교수)만 선임됐다. 관련 법 개정과 기능 이관이 요원하다.

문제는 통합 자문회의의 역할 수행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의 시한이 올해로 끝난다. 올 연말까지 제4차 기본계획(2018~2022년)을 수립, 자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 과기기본계획은 5년 단위의 국가 과학기술 발전 계획이다.

4차 기본계획은 현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첫 청사진이다. 연말까지 관련 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기존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심의할 수밖에 없다. 통합 자문회의에 플래닝타워 역할을 맡기겠다는 구상이 처음부터 삐걱인다.

자문회의법 개정안은 과기법 개정안과 형제 법안이다. 두 법안이 모두 통과돼야 효력을 발휘한다. 과기법 처리가 늦어지면 통합 자문회의 출범도 해를 넘긴다.

야당은 원론 상에서 자문회의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안이 담고 있는 '사무기구 설치' 조항을 깊이 들여다본다.


과방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박대출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내용에 당장의 이견은 없지만 기구 설치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과학기술기본법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자문회의법은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