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SK하이닉스(옛 하이닉스반도체). 이 회사는 한때 사라질 운영에 처하기도 했다. 외국계 반도체 업체의 매각 실사, 워크아웃, 회생 불능 진단 등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회생에는 산업 흐름을 읽는 정책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 합작공장 설립 승인이다. 당시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는 '기술 유출' 우려를 제기하며 하이닉스 중국 합작공장 설립에 난색을 표했다. 기술유출 심의위원회가 구성됐고, 기술 유출 가능성 여부를 철저히 검증한 끝에 결국 하이닉스의 중국 진출을 승인했다.

이후 반도체 공장의 중국 진출 및 증설은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정한 검증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가능해졌고, 삼성전자도 중국 진출을 통해 세계 1위 메모리 업체로서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술 유출 여부는 산업계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기술유출방지법은 해당 산업계에 속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우려해서 만든 장치다. 이들 기업이 기술 유출 우려와 해당 기술의 가치 판단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중국 공장 증설 제동 움직임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관련 산업계에 속한 기업 대부분이 중국 증설을 원하고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발목을 잡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동을 거는 이유로 당사자들이 문제 제기도 하지 않은 '기술 유출'을 꼽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진출 승인 신청을 받은 뒤 별도의 전문 기술수출 심사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가 없는 조치로, 업계에서는 사실상 진출 불허를 위한 명분 만들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적기 투자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주무 부처의 조치여서 아쉬움이 더하다. 관련 업계의 주가는 폭락했다. 훗날 이번 정부 조치가 하이닉스반도체의 부활과 반대되는 정책 과오로 기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