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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금융의 본분을 생각하다

발행일2017.09.13 14:11
Photo Image<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필자는 최근 한 권의 책을 번역·출간했다. 원제는 'Other People's Money'(타인의 돈)이지만 '금융의 딴 짓'으로 한글판 제목을 정했다. 이 책이 금융 산업의 일탈을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랜 전부터 영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의 당위성을 주장해 온 존 케이의 역작이다.

비판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980~1990년대 이후 시장 근본주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해져 갔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익 극대화에 박수를 보내는 반면에 기업의 사회 책임에는 제한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시장은 우월하고 선한 것'이라는 시장 맹신주의 경향도 득세했다. 이런 사이 금융 산업은 더욱 탐욕에 빠졌다. 투자 대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자신들끼리만 빈번하게 매매를 했으며, 자신들이 설정한 성과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하고 타인의 돈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만을 불렸다.

모름지기 트레이딩은 위험을 먼저 인지한 자가 위험을 알지 못한 상대에게 그 위험을 떠넘기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내부 정보가 활용되기도 한다. 이 떠넘기는 행위를 잘하는 것이 곧 유능한 금융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주식을 매매할 때도 해당 기업의 펀더멘털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시시각각 변하는 모니터 화면 속의 주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당연히 이들 트레이더에게는 투자 대상 자산에 매우 박약한 껍데기 지식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래리 서머스는 이러한 현상을 '케첩 경제학'으로 설명했다. 즉 케첩 시장을 분석할 때 일반 경제학자들은 케첩 가격을 결정하는 토마토와 대체재 시세, 노동비용, 소비자 소득 추이 등 수요와 공급 요인 등을 총괄한 입체 분석을 한다.

반면에 케첩 경제학자들은 2쿼트병 케첩 가격이 1쿼트의 그것보다 두 배인 경우 케첩 시장은 효율성이 있다고 기계처럼 분석한다. 이렇듯 금융상품을 구성하는 기초자산에 대한 이해 없이 해당 유가증권을 트레이딩 하는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터져 나온 사건이 바로 2007년 금융 위기다.

필자는 '착한 기업에 투자하라'라는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은 일본 가마쿠라투신의 투자 철학을 담고 있다. 즉 투자란 '착한 기업을 응원해 주는 것'이라는 투자 철학이다. 가마쿠라투신은 일본 전역을 샅샅이 뒤져 착한 기업을 발굴하면 그 업력과 재무 상태와 상관없이 투자를 감행했다. 여타 금융기관은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 주고 정작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아 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가마쿠라투신은 착한 기업에는 비가 올 때도 그들의 우산이 됐다.

또 투자 기업을 자세히 알리기 위해 수익자(고객)들과 투자 대상 기업 간 만남의 장도 정례 모임으로 마련했다. 투자란 케첩경제학이 아닌 토마토경제학(토마토 그 자체의 모양, 색깔, 맛을 아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런 투자 방식으로 가마쿠라투신은 2014년 5월 수백개의 일본 투자신탁 가운데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즉 '착한 투자'가 '돈 버는 투자'임을 실증했다.

'금융의 딴 짓'과 '착한 기업에 투자하라', 이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투자 철학은 바로 스튜어드십이다. 그것은 책상 위의 여러 대 모니터에 흐르는 차트와 정보에만 의존해서 투자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대신 진정한 투자는 발로 뛰며 좋은 기업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을 투자로 응원해 주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궂은 날일수록 더 다가가는 것이 바로 금융의 본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youngjae.ryu@sustinv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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