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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회생법원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선고 공판을 사흘 앞두고 방청권 추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수십 석에 불과한 자리를 두고 5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세기의 재판'에 대한 국민 관심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한다.

이 부회장 재판에 이목이 쏠리는 건 국민 정서도 한몫한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 재벌에 국민은 일정 수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집단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책임을 다해서 '신의'를 지킬 수 있는 존재이길 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지난 7일 뇌물 공여 혐의로 징역 12년을 구형받은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이게 다 제 탓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가 잘못되면 안 된다는 중압감에 큰 부분을 놓쳤다고도 언급했다.

이 부회장이 언급한 큰 부분이 바로 신의고, 국민이 요구하는 삼성의 책임 의식이다. 그러나 이 큰 부분(기대)이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단순히 돈이 많다는 이유로, 재벌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과 삼성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국민들의 기대를 막무가내식 철퇴로 바꾼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도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도의적 책임은 이 부회장과 삼성이 인정하고 앞으로 국민과 사회에 갚아 나가야 할 '빚'이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현을 원하는 사회에 이 부회장과 삼성은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은 오롯이 재판부 결정에 달렸다. 재벌 때리기식 여론이나 무작정 삼성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법정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국민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탄핵 결정을 내린 사실을 기억한다. 그 결과를 수용해 우리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25일 이 부회장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 결과를 우리가 새 출발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