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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환경연구소장

원자력발전소뿐만 아니라 비행기나 화학공장 등 산업 시설은 사회에 편리함과 이익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양한 사건과 사고도 유발한다. 이에 따라서 사회는 이런 시설이 도입될 때 안전성이 보장되기를 요구한다. 이때 우리는 '과연 어떤 시설이 어느 수준까지 안전성을 확보할 때 사회가 그 시설을 안전하다고 받아들이는가(How safe is safe enough)'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원전에 대한 이 질문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제시한 답은 '0.1% 규칙'이라고 불리는 안전 목표다. '0.1% 규칙'은 하나의 원전을 새로 도입할 때 사회에 추가되는 위험도가 다른 산업 설비에 의한 모든 위험도의 1000분의 1 이하가 되도록 안전 수준을 확보하라는 규칙이다. 이는 원전을 향해 다른 산업보다 훨씬 높은 안전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에도 동일한 안전 목표가 도입됐다.

그럼에도 국내 원전의 안전 수준은 아직도 사회 논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원전과 같은 설비에 대한 일반인의 불안감은 해당 설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크기, 관련 사고에 대한 지식 수준, 사고 발생 시 대응하는 조직에 대한 신뢰도, 언론 보도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원전 부품 비리 사건, 고리 정전 은폐 사건과 경주 지진, 관련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국내 원전 안전성에 논란이 야기된 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결과다.

앞으로도 장기간 원전이 가동될 우리나라로서는 가동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사회 문제다. 이 문제와 연관해 국내 원자력계도 기존의 원전 안전성 향상 노력이 적절했는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가동 원전과 관련된 원자력 안전 연구는 다음과 같은 측면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가동 원전 관련 안전 연구의 최종 목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신규 원전에 요구하는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의 실질적 배제'와 같이 국민이 이해하고 안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의 실질적 배제'란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녹는 사고가 발생해도 원전 외부로는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 경우 원전 사고가 일어나도 공학적으로는 주변 주민이 다른 곳으로 대피할 필요가 없는 안전 수준이 확보된다.

다음은 지진과 같이 국민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대규모 실증 실험이 요구된다. 그동안에는 지진 안전성을 다양한 분석과 일정 규모의 실험으로 확보했다. 이제는 대규모 지진에 대한 원전 설비의 건전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증 실험이 추가로 필요하다. 실증 실험은 지진 안전성 등에 대한 국민의 우려 불식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최신 기술을 활용한 첨단 안전 기술 개발이다.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터, 로봇 등 다양한 기술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기존의 안전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복잡한 대규모 실험을 대체하고자 하는 가상 원자로 개발도 고려할 만하다. 이와 함께 가상현실(VR)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일반인이 간접으로나마 원전의 안전 수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원자력 수용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 시점에서 원전 안전성은 기술과 사회 모든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앞으로 원자력 안전 연구는 기술 측면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의 실질적 배제' 수준을 구현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이와 함께 국민의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나아가 원전의 안전 수준에 대한 이해 제고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원자력 산업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편익과 비용에 대한 국민의 정확한 이해가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양준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환경연구소장 jeyang@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