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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건물은 부와 권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다. 당대의 부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은 어떻게 하면 넓고, 높은 건물을 보다 화려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근대로 들어서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기술적 합리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건물 효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한 건물은 다시 한 번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건축물 허가정보와 인공지능(AI) 기술, 에너지 정보(Big Data)를 활용해 건물에너지를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살아있는 건물 시대' 도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사용의 약 48%가 건물에 집중돼 일찍이 건물에너지 절감을 위한 각종 정책을 펼쳤다. 특히 사용자 에너지 데이터를 분석해 에너지 절감방안을 제시하는 정책에 주목할 만하다. 소비자와 전력회사가 전력사용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에너지 절약정보를 제공하는 '그린 버튼(Green Button)'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도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 설치·운영 전문회사인 아즈빌이 570여개 건물에 원격으로 설비, 보안, 방재 등 데이터를 종합 분석하고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건물 유지관리 비용을 연간 63%까지 절감했다.

우리나라도 오랜 동안 건물 에너지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한국에너지공단도 올해 배출권거래 대상기업, 에너지사용량 신고 업체 등 70여개 에너지다소비 건물을 대상으로 ICT 기반 데이터 분석을 통해 건물에너지 효율 향상을 유도하는 '스마트 에너지 분석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기존 건물에너지 컨설팅을 위해서는 많은 진단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고 긴 시간을 할애했다. 진단 자체가 전문적이기 때문에 건물사용자 입장에서 에너지절감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이 제한적이었다. 건물은 흔히 형태가 비슷해 에너지 절감방안이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무실, 판매시설, 병원 등 건물 유형에 따라 에너지 절감방법이 상이하다.

'스마트 에너지 분석 캠페인'은 건물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에너지 절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건물사용자가 직접 에너지관리시스템, 원격검침 등으로 얻은 빅 데이터를 활용해 손쉽게 에너지 사용현황과 패턴을 파악하고, 스스로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빅 데이터로 파악한 에너지 사용패턴을 바탕으로 해당 건물에 적합한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 등의 활용방안도 제안한다. 에너지 비용 최적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함께 건물에너지 분야 빅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는 공공에너지 공급부문에서 빅 데이터를 활용하면 23.2% 수익성 향상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건물의 빅 데이터 활용은 에너지 신산업을 포함한 에너지 산업 가치사슬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스마트 에너지 분석 캠페인'이 체계적인 에너지 데이터 관리 방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살아있는 건물 시대'를 앞당기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남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nhkang@energy.or.kr